등록 : 2008.05.20 18:28
수정 : 2008.05.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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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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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기자의 니하오 베이징 /
올림픽의 세계를 소재로 하는 권오상 기자의 현장칼럼, ‘니하오 베이징’을 21일부터 격주로 게재합니다.
비운의 올림픽스타 짐 소프(Jim Thorpe·미국). <에이피>(AP)는 1950년 그를 20세기 전반부 가장 위대한 스포츠인물로 꼽았다. 하지만, 소프가 올림픽 역사에 우뚝서기까지는 오랜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912년 제5회 스톡홀름 올림픽 근대 5종과 10종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이듬해 메달 두 개를 모두 박탈당했다. 프로선수로 뛰었다는 경력 때문이었다. 당시 대학 선수 대부분은 다른 이름을 써가며 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인디언의 피를 물려받은 소프는 “인디언학교에 다니면서 이런 규정을 모른 채 뛰었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묵살당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은 메달의 부적격 여부는 대회가 끝난 뒤 30일 이내에 판단하도록 돼있었다. 하지만, IOC와 미국아마추어스포츠연맹은 1년이 흐른 뒤 그의 메달 박탈을 강행했다. 1910년대 미국에서 소프의 몸에 인디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결정적으로 불리한 요소였다.
소프가 뛰었던 근대 5종, 10종경기의 팀 동료였던 에버리 브런디지는 1952년 IOC 위원장이 됐다. 하지만, 그는 소프의 복권운동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여성의 올림픽 출전을 반대했고,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흑인민권운동을 위해 시위를 했던 두 명의 흑인선수의 메달을 박탈했다.
소프는 결국 1983년이 되어서야 ‘잃어버린 메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브런디지가 IOC 회장직에서 물러난 지 10년 뒤의 일이다. IOC는 스포츠에 대한 혁혁한 공로와 영향력을 인정해 그의 메달을 원상복귀시켰다. 하지만, 소프는 이미 1953년 알콜중독과 가난에 찌든 채 숨진 뒤였다. 인종주의의 가면을 쓴 미국 스포츠정책의 희생양이었던 소프는 결국 1999년 20세기 최고의 스포츠인물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소프가 ‘잃어버린 메달’을 찾는데 허비한 70년의 세월은 다름아닌 흑인과 소수민족, 성적소수자들이 걸어온 고난의 세월이기도 하다. 3개월여 뒤면 21세기 두번째로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대지진의 틈바구니에서 신음하고 있는 중국은 분명 위대한 용기와 끈기로 올림픽을 일으켜세우는 저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소프처럼 신음하고 있는 티베트의 ‘잃어버린 주권, 잃어버린 자치’는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
권오상 기자
k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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