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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9 18:36 수정 : 2005.05.09 18:36

롯데 정수근

수비없는 반쪽야구 볼맛 안나죠?

선수들은 부상 걱정에 미칠지경

올해 광주 무등구장이 12억원을 들여 새로 인조잔디를 깔았다. 수도권(잠실, 문학, 수원)을 빼고, 프로야구 경기 절반은 인조잔디에서 열린다. 그러나 선수들은 인조잔디 질이 떨어져, 천연잔디에서 뛸 때보다 갑절은 위험하고 피로하다고 호소한다. 지난해 두산에서 롯데로 팀을 옮겨 천연잔디에서 인조잔디 구장으로 안방이 바뀐 정수근 선수의 이야기를 편지글로 재구성해 어려움을 들어봤다.

정수근이 팬들에게

롯데 정수근이에요. 잘 지내시죠?


롯데로 온 뒤, 두산에 있을 때만큼 과감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팬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저도 인정해요. 사실 두산 안방경기장인 서울 잠실은 천연잔디구장이라 마음껏 몸을 날렸어요. 그런데 부산 사직은 인조잔디잖아요. 텔레비전이나 관중석에서 보시면 새파랗고 쿠션도 있어 보이지만, 실제 선수들에겐 이거 완전히 아스팔틉니다.

섣불리 슬라이딩하다간 야구인생 끝장나죠. 바닥에 닿아도 미끄러지지 않아서 허리가 완전히 꺾여버려요. 화상도 다반사죠. 다른 선수들도 인조잔디구장에서 경기가 있을 때는 아예 슬라이딩할 생각은 접고 들어갑니다. 선수들의 기량을 100이라고 보면, 인조잔디에서는 70~80 정도 밖에 발휘할 수가 없는 것이죠.

야구의 맛은 호쾌한 홈런이나 안타에도 있지만, 옆으로 빠지는 공을 몸을 던져 잡아내 아웃시키는 수비의 맛도 있는 것이잖아요. 사실 열심히 몸날리면 한 경기에 1, 2개 정도는 공이 글러브에 걸리거든요. 이런 맛이 인조잔디에선 아예 없는 것이죠. 팬들은 수비야구는 없는, 사실상 ‘반쪽야구’를 보고 있는 거죠.

게다가 얼마나 딱딱하고 미끄러운데요. 거의 스케이트장 수준이라고 할까요. 사직만해도 깐 지가 꽤 돼서 3~4㎝ 되던 인조잔디 높이가 1~2㎝로 닳았고, 바닥 역시 푹 꺼져 굳었어요. 스파이크를 신고 서면, 스파이크가 박히는 느낌이 전혀 없지요. 잘 보면 아시겠지만, 시합하다가 자주 자빠지는 게 다 이런 까닭이 있는 거죠. 정말 미치겠어요. 안 다치고 안 미끄러지려고 선수들이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아마 팬 여러분은 상상하지 못하실 거에요. 잔 부상도 늘었어요. 두산 있을 때는 딱 1번 근육통이 왔어요. 그러나 여기선 계속 잔 부상이 생겨요. ‘내가 운동을 안해서 그런가, 준비운동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딱딱한 인조잔디 탓이더라고요. 동료 선수들도 고생하는 선수가 5~6명은 돼요.

한참 인조잔디 이야기하니까 예전 한-일 슈퍼게임 하려고 일본 갔을 때 도쿄돔 인조잔디가 생각나네요. 천연잔디처럼 잎사귀가 하나하나 살아 있으면서 폭신폭신한 감촉에 슬라이딩을 해도 전혀 피부가 까지지 않더라고요.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야~ 이게 진짜 인조잔디다, 우리는 완전히 아스팔트서 야구하는구나” 했습니다. 신발 벗고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오늘도 매일 우리 구장 보면서 제대로 됐으면 하고 바랍니다. 말이 길었네요. 어쨌든 열심히 뛸 게요. 야구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럼 이만. 2005년 5월 정수근 올림.

정리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 인조잔디가 깔린 대구 시민운동장. 전체 7개구단 구장 가운데 잠실, 문학, 수원을 뺀 4곳이 인조 구장이다. 구형 인조잔디는 선수 부상을 부르고 경기의 질을 하락시킨다.

천연잔디 잠실·문학·수원 3곳만 남아

비용 아끼려 값싼 저질 선호, 프로야구 경기력 향상 막아

“뉴욕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가 와도 한국 인조잔디구장에선 두산 손시헌만큼 수비하진 못할 거다.”

프로야구계에 도는 우스개다. 미국의 유명한 야구 칼럼니스트 레너드 코페트도 미래에 야구보는 재미를 떨어뜨릴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로 ‘구장의 인조잔디화’를 꼽았다.

출범 24년째를 맞는 한국프로야구는 지금 수도권 3개 구장(잠실, 문학, 수원)을 빼곤 모두 인조잔디로 돼 있다. 이틀에 한번 깎고, 비료치고 물을 줘야하는 천연잔디구장은 매년 1억원 가량 관리비용이 들어 구장 관리주체인 지방자치단체에서 꺼린다. 구장도 오래돼 천연잔디를 깔 ‘기본 인프라’인 배수시설도 미흡하다. 그나마 인조잔디도 기술이 발달해 천연잔디에 가까운 제품이 나와 있지만, 골프 연습장 퍼팅매트 수준인 구식 잔디를 쓰고 있다.

나진균 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은 “인조잔디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보다는 관리상의 편리함과 경제성만이 강조된 것으로, 선수들의 과감한 허슬플레이를 어렵게 한다”며 “천연잔디가 어렵다면 최소한 좋은 질의 인조잔디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메이저리그는 1990년대초까지 인조잔디로 바꾸는 게 유행이었다가 이후 천연잔디 구장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토론토, 미네소타, 탬파베이의 안방구장 정도가 인조잔디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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