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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문 해외파 스타들에 박수를 |
김동훈기자의 직선타구
1981년 5월28일 일본 가와사키 구장. 네번째 타석에 들어선 장훈(당시 롯데 오리온스)은 한큐 브레이브스의 투수 야마구치 다카시의 초구에 방망이를 돌렸다. 포물선을 그린 공은 구장 오른쪽 꼭대기에 쳐진 그물에 튕겨 천천히 떨어졌다. 그물이 없었다면 장외홈런이었다.
개인통산 3000안타. ‘불멸의 대기록’이 세워진 순간이었다. 장훈이 1루 베이스를 돌며 헬멧을 하늘 높이 벗어던지는 순간, 100만 재일동포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도 함께 날아갔다. 이 모습은 당시 국내 한 음료업체의 텔레비전 광고에 활용돼 저녁마다 안방으로 전해졌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탄생으로 답답해했던 국민들에게 장훈의 한방은 통쾌함 그 자체였다.
장훈이 23년 간 세운 3085안타는, 그가 프로생활을 한 기간보다 더 긴 2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깨질 줄 모른다.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기 위해 손바닥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 흐르는 고통을 견디며 방망이를 휘두른 결과다.
1997년 박찬호는 제5선발 자리를 꿰차며, 한국인 최초의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됐다. 멀게만 느껴졌던 메이저리그에 한국인이 우뚝 선 것이다. 박찬호는 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들을 향해 희망의 공을 던졌다. 그가 최근 이룬 100승 금자탑은 타고난 강한 어깨만으로 쌓은 것은 아니다. 쉼없는 하체훈련, 그리고 술자리에서도 팔 굽혀펴기를 할 정도의 철저한 자기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5년 이승엽과 최희섭. 일본과 미국에서 나란히 한국인의 기개를 펼쳐보이고 있다. 이승엽은 5경기 연속홈런 등 홈런 15개로 퍼시픽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팀에서도 가장 많은 홈런을 치고 있다. 최희섭은 3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4경기에서 안타 7개를 모두 홈런으로 장식했다. 흔한 말로 “쳤다 하면 홈런”이다.
두 선수의 기록은 ‘플래툰 시스템’(한 수비위치에 두 명의 선수를 경쟁시키는 것)을 극복하고 나왔기에 더욱 대단하다. 들쭉날쭉한 출장으로 타격 감각을 유지하기가 쉽지않을 테니 말이다.
지난해 한국 최고의 타자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승엽은 “백인천 감독 시절 이후 가장 혹독한 훈련”을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최희섭은 시즌이 끝나면 국내에 들어와 경남 남해 모래사장을 뛰고 또 뛰었다. 그는 눈이 나빠질까봐 컴퓨터 모니터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땀과 눈물 속에 이뤄진 이들의 활약은 어린이에게 꿈을, 서민들에게 희망을 준다.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해외파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낸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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