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4 18:31
수정 : 2005.08.04 18:32
김동훈기자의 직선타구
롯데 최동원의 공은 꿈틀거렸다. 해태 선동열의 공도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타자들의 방망이는 연신 허공을 갈랐다. 1987년 5월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는 당대 최고 에이스 맞대결이 펼쳐졌다. 86년 두차례 맞붙어 한번씩 완봉승을 주고 받았으니, 결승전이나 다름없었다.
선동열이 초반 2실점했지만, 최동원도 9회 동점을 허용해 승부는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경기는 과열됐다. 12회초 해태 공격 때는 1루심의 세이프 판정을 두고 관중석에서 빈병과 깡통이 날아들었다. 연장 15회. 하지만 둘은 마운드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날은 어두워졌고, 오후 2시에 시작한 경기는 저녁 7시를 향하고 있었다. 결국 2-2 무승부. 선동열은 56타자를 상대로 삼진 10개를 잡으며 무려 232개의 공을 던졌다. 최동원도 51타자에게 삼진 8개를 솎아내며 209개를 뿌렸다.
에이스 맞대결은 팬들을 흥분시킨다. 한국시리즈에서나 감상하는 에이스 대결을 시즌 중에 보는 것도 적잖은 즐거움이다. 다승왕을 다투는 거물급 에이스끼리의 맞대결은 1년에 1경기, 많아야 3경기 정도다.
과거에는 이런 에이스 대결이 심심찮게 펼쳐졌다. 93년 우승을 놓고 불꽃접전을 펼친 해태와 삼성은 에이스 조계현과 박충식이 2번 맞대결을 펼쳤다. 공교롭게도 광주에서는 조계현, 대구에서는 박충식이 승리해 안방 팬들을 열광시켰다. 95년 불과 반 경기 차로 정규리그 1·2위를 차지한 ‘서울 라이벌’ 두산과 엘지의 에이스 김상진과 이상훈도 맞대결을 3번이나 펼쳤다. 92년에는 다승왕 한화 송진우와 우승팀 롯데의 에이스 염종석이 시즌 중 맞대결을 벌였고, 99년에도 다승 1·2위 정민태와 정민철의 진검승부가 있었다.
올해는 손민한(롯데) 박명환(두산) 배영수(삼성) 등 ‘트로이카’가 등장해 프로야구 붐 조성에 앞장섰다. 하지만 이들간의 맞대결은 아직 없었다. 기회까지 없었던 건 아니다. 개막전에서 삼성은 배영수를 내세웠지만, 롯데는 손민한을 숨겼다. 이후에도 이들 3명은 등판일정을 조정하며 맞대결을 비껴갔다.
뿐만 아니다. 박명환은 최근 3연패의 부진에 빠지자 다른 팀 에이스와의 대결도 피했다. 배영수는 지난해 플레이오프 1차전에 나오지 않아 두산 에이스 게리 레스와의 맞대결을 피했다. 에이스간 맞대결을 피한다면 당장 한 경기는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팬들의 바람을 외면하고, 야구발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된다. 팬들은 에이스 대결을 보고싶어 한다. 이유는 단 하나, 명승부가 나오기 때문이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처럼 말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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