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30 21:08
수정 : 2012.11.3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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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3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2009년 내셔널리그 우승을 함께한 필라델피아 필리스 유니폼을 들어 보이며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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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61번’ 박찬호 은퇴 기자회견
“한국 야구서 가장 운 좋은 사람
한화에는 아쉽고 미안한 마음”
“미국서 야구 행정·경영 공부 계획
지도자도 하고 싶은 일 중 하나”
눈물이라도 보일라치면 어김없이 플래시가 터졌다. 눈은 빨개졌지만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어 보였다. 다만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했을 때처럼 새로운 도전 의지는 강해 보였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39)는 30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제 끝난다는 말을 드리는 것보다는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또다른 약속, 도전, 꿈을 위해서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할 것 같다”며 화려했던 야구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1994년 4월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에서 엘에이(LA)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지 19년 만이다. 박찬호는 “나는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며 “시골에서 태어나 주위 권유로 멋모르고 야구를 시작해 미국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해 큰 무대에서 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야구선수로서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경험했다. 2000년 18승(10패)을 거두는 등 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했다. 5년 6500만달러의 초대박 계약도 성사시켰다. 이 시절의 박찬호는 야구 선수 이상의 존재감을 뽐냈다. 외환위기로 힘든 시절을 보낸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됐다.
하지만 2002년 이후 허리 통증 등 잦은 부상으로 부침을 겪었고, 2005년 이후에는 여러 팀을 전전했다. 그래도 도전을 멈추지 않으며 2010년 10월2일 피츠버그 파이리츠 유니폼을 입고 마침내 아시아 투수 역대 최다승인 124승을 달성했다. 17년 메이저리그 생활 동안 그가 벌어들인 돈은 연봉으로만 8545만달러(924억원)에 이른다. 박찬호는 2010년 말 또다른 도전을 선언하며 일본프로야구(오릭스 버펄로스)에 진출했고, “은퇴는 한국에서 하고 싶다”던 소원을 풀기 위해 올해는 고향팀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다. 19년 동안 그는 줄곧 ‘61번’ 등번호를 고수했다.
박찬호는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뭔가를 이뤄내서가 아니라 잘 견뎌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미국, 일본프로야구에서 그가 겪었을 차별과 외로움, 그리고 고난과 시련을 짐작하게 했다. 박찬호는 “지난 5년간 매년 한 번씩은 부상을 당했다가 다시 회복해서 던지는 일을 반복했다”며 “한화에서는 팀 성적에 도움을 많이 못 준 것 같아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또한 “은퇴 의사를 밝힌 후 많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한결같이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열심히 했구나, 최선을 다했구나 하는 뜻으로 들려 아쉽다는 말보다 더 감격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61번 유니폼을 벗은 야구 영웅의 새로운 길은 무엇일까. 박찬호는 은퇴 후 미국에서 야구 행정과 경영을 공부해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또한 “지도자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의 한 가지”라며 향후 지도자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그는 12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짤 예정이다.
박찬호는 기자회견 말미에 테이블 앞에 전시된 13장의 유니폼을 손으로 일일이 가리키며 옛 추억을 끄집어냈다. 이제 그의 야구 인생 30년은 유니폼들과 함께 추억으로만 남는다. 박찬호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앞으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되겠다”고 기자회견을 갈무리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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