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8 18:31
수정 : 2005.08.18 18:32
김동훈기자의 직선타구
프로야구 첫 해인 1982년 박철순(당시 OB 베어스)은 80경기 중 40%가 넘는 33경기에 마운드에 올랐다. 선발로 19경기, 중간에 17경기에 나서 16선발승 8구원승 7세이브를 기록했다. ‘불사조’라는 별명답게 선발·마무리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투입된 것이다.
이듬해 재일교포 장명부(당시 삼미 슈퍼스타즈)는 한술 더 떴다. 100경기 가운데 무려 60경기에 나서 427⅓이닝을 던졌다. 성적은 더욱 놀랍다. 선발로 나선 44경기 중 36경기를 완투했고, 5완봉승을 곁들였다. 나흘 연속 등판해 2완투승 2세이브를 올렸고, 8경기를 연속 완투하기도 했다. 성적은 28선발승 2구원승 6세이브. 역시 선발·마무리를 가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1994년. 이광환 감독의 엘지 트윈스는 투수를 선발과 중간계투·마무리로 철저히 나눴다. 이상훈(18승) 김태원(16승) 정삼흠(15승)은 시즌 내내 선발로만 나왔다. 중간계투는 오른손에 박철홍 차동철 차명석, 왼손에 강봉수와 민원기가 번갈아 마운드에 올랐다. 마무리는 김용수(35세이브포인트)가 맡았다.
이를 두고 선진 야구의 ‘스타 시스템’이라고 불렀다. 별을 그렸을 때 바깥쪽 5개의 꼭지점이 선발이고, 안쪽 5개의 점이 중간계투, 그리고 정중앙에 마무리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비로소 미국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처럼 투수가 분업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엘지가 그해 한 시즌 최다승 타이기록인 81승(45패)으로 2위와 무려 11.5경기 차로 정규리그를 평정하고, 한국시리즈에서 4승 무패로 우승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로부터 다시 11년이 흐른 2005년의 한국 프로야구는 어떨까? 이상훈(당시 엘지) 이후 10년 만에 선발 20승을 바라보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선발투수’ 손민한(롯데)은 16승 중 1구원승이 포함됐다.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1세이브도 있다. 노장진이 부상으로 빠지자 마무리로 긴급 투입된 탓이다.
‘초특급 에이스’ 배영수(삼성)의 성적에도 생뚱맞게 2세이브가 끼어있다. 선두 다툼을 벌인 두산전에 난데없이 소방수로 등장한 결과다. 두 대표 에이스마저 선발·마무리를 가리지 않으니, 다른 투수에게 정해진 ‘보직’이 있을리 없다. 어제 조금 잘 던지면 오늘 선발이고, 구위가 좀 떨어진다 싶으면 내일은 중간계투다. 감독들에게 떨어진 ‘발등의 불’ 앞에 투수 분업화는 아직도 먼 나라 얘기다.
한국프로야구 마운드에 달린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다. 20년 전 박철순과 장명부를 향해….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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