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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슈퍼스타즈 초대감독 박현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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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으로 투병 중이던 박씨는 지난달 16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시구자로 나서는 등 생의 끄트머리에서도 야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그는 시구 뒤 “내가 자란 인천의 2만5천팬들 앞에서 생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구를 해 감격적인 순간 이었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달 13일에는 자신이 때린 홈런 공 50개를 포함해 그동안 애써 모아왔던 옛 야구용품을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기증했다.
1929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부터 가족과 함께 인천으로 옮겨와 이곳에서 살았다. 인천 야구명문 동산고에서 간판투수로 활약하다, 1950년대에는 육군에서 홈런타자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뒤 국가대표 간판 4번 타자로 활약하며 무수한 홈런을 쳐내는 등 50~60년대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명성을 떨쳤다.
현역 은퇴 뒤 인천 최초의 프로 프랜차이즈 야구팀인 삼미와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에게 불행이자 행복이었다. 팀을 맡은 뒤 13경기 만에 해임돼 역대 프로야구 최단명 감독이 됐다. 그러나 인천 야구의 간판선수로서 초대 감독까지 역임한 질긴 인연 탓으로 인천 야구의 대부로 지금까지 팬들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유족으로는 홍원(전 동서증권 자금부장), 홍규(바이카 원장)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삼성의료원 장례식장 7호실, 장례식 24일 새벽 6시.(02)3410-6907.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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