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4 19:13
수정 : 2013.07.0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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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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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 기자의 풀카운트
3일 한화전을 앞둔 잠실구장 엘지(LG) 더그아웃에서는 재밌는 설전이 벌어졌다. 엘지 투수 우규민이 “내가 (두산) 유희관보다는 빠르다”고 우기자 차명석 엘지 투수코치가 “희관이가 더 빠르지 않냐”고 한 것. 옆에 있던 손혁 <엠비시(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이 “최근 유희관 최고 구속이 140㎞ 정도 나온 것 같다”며 차명석 코치를 거들자 우규민은 그제야 “구속은 중요하지 않다”고 애교 섞인 최후 변론을 하고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차 코치는 그런 우규민의 등에 대고 “꼭 공 느린 애들이 그런 소리를 하더라”며 한번 더 비수를 박았다. 사실 올 시즌 유희관의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38㎞로 최고 140㎞를 기록한 우규민이 약간 더 빠르다. 그러나 150㎞를 넘나드는 강속구 투수들이 즐비한 프로에서 도토리 키재기나 마찬가지.
그러면 실제 구속과 실력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코치의 입장에서 구속과 제구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에 차명석 코치는 절묘한 비유를 곁들여 답했다. “연애할 때는 외모를 보고 결혼할 때는 성품을 보듯이, 구속은 스카우트의 조건이지만 현장에서 1군에 올릴 때는 제구를 본다”는 것. 그러면서 “인물과 품성을 갖추면 일등 신랑감이 되고, 구속과 제구를 갖추면 20승 투수가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차명석 코치는 현역 시절 제구의 달인 그레그 매덕스를 빗댄 ‘차덕스’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절묘한 제구력으로 엘지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그런 차 코치의 지도 아래 엘지는 레다메스 리즈 정도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강속구 투수 없이 팀 방어율 1위(3.55)의 철벽 마운드를 구축했다. 우규민을 비롯해, 신정락, 류택현, 이상열 등이 선발과 불펜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투수들. 이들의 직구 평균 구속은 130㎞대에 머물지만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는 칼날 제구와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다양한 변화구로 팀 상승세의 주역이 됐다.
역시 현역시절 빼어난 제구력을 자랑했던 손혁 해설위원은 “노력으로 140㎞ 중반까지는 구속을 올릴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타고나야 한다. 그러나 제구는 얼마든지 노력으로 정상급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구를 갖춘 투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체계적인 훈련과 많은 실전 경험이 필요하다. 시합에 나가서 맞아도 보고, 어디로 던져야 안 맞는지도 깨닫고, 그러면서 자기 공에 대한 자신감도 갖게 되는 등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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