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1 19:05
수정 : 2013.08.01 20:51
허승 기자의 풀카운트
우승을 노리던 기아(KIA)는 현재 6위까지 내려앉았다. 팀 방어율은 8위(4.75)까지 추락했다. 선발 평균 방어율도 7위(4.50)에 머물러 기아가 자랑하는 선발 야구도 사라졌다. 팬들은 “그래도 투수진은 키워줄 거라 기대했는데 그마저도 물 건너 간 것 같다”며 선동열 기아 감독에 포화를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팬들이 진짜로 아쉬워하는 것은 성적이 아니다. 한 야구 게시판에는 “이제 명문팀이란 자부심도 다 사라졌다. 팀 분위기도, 자신감도 침체됐다. 이제 최강팀은 삼성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2000년대 들어 기아의 성적이 신통치 못했지만 기아 팬들에게는 한국 야구사 최강팀 해태의 후신이란 자부심이 있었다. 해태의 상징 선동열이 친정팀 감독으로 복귀할 때 팬들이 기대했던 것은 그점이었다. 올시즌 우승후보로 거론되며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무기력하게 패하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팬들의 자부심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7월31일 삼성에 4-1로 앞서다 4-16으로 대패한 경기를 두고 한 팬은 “코칭스태프보다 심리 치료사가 필요한 것 같다. 승부처에서 부담감에 눌린 것 같다”고 실망감을 표했다.
올 시즌 선동열 감독은 세번의 큰 선택을 했다. 첫번째는 앤서니 르루의 마무리 전환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선 감독은 김진우와 양현종까지 포함해 고심을 거듭한 끝에 앤서니를 마무리로 낙점했다. 두번째는 김상현과 송은범의 트레이드였다. 세번째 선택은 앤서니의 퇴출과 외국인투수의 교체다.
첫번째 선택은 실패로 끝났고, 두번째 선택은 아직까지는 나쁘다. 세번째 선택의 결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었다. 앤서니는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에서 대부분을 선발로 뛰어온 만큼 마무리는 생소한 자리였다. 그러나 팀을 위해 마무리란 자리를 받아들였다. 김상현은 팀 성적이 리그 하위권을 맴돌며 자부심이 바닥에 떨어진 기아팬들에게 12년 만에 우승의 감격을 느끼게 해준 주역이었다. 그러나 두 선수는 모두 결정이 되고 난 후에야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팀에 헌신했던 것에 비하면 박한 대우다.
물론 감독과 구단의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결과까지 좋았다면 팬들의 비판도 지금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정에서 보여준 소통 부재가 명문팀을 응원한다는 팬들의 자부심은 물론 선수단의 사기에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
한 야구인은 “선동열 감독은 9개 구단 감독 중 가장 장기적 비전으로 팀을 이끄는 감독이다.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동열 감독은 삼성 시절에도 팬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안지만, 권혁, 권오준 등을 불펜으로 전환해 지금 삼성의 최강 불펜진의 밑그림을 그렸다. 선동열 감독이 내린 선택들이 지금 당장이 아니라 시즌이 끝난 뒤에 혹은 2~3년 뒤에 어떤 결과로 평가받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위기에 빠진 팀을 추스르고, 선수와 팬들의 가슴에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선동열 감독의 리더십이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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