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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71) 고양원더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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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년’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
처음 들어올 땐 ‘과연 될까’ 생각
프로 보낼 때 ‘딸 시집보낸 기분’
44년 감독생활 중 딱 세 번 눈물
1977년 황금사자기 8강 못 잊어
‘야신’보다 ‘잠자리 눈깔’ 별명 좋아
이 시대의 필요한 리더십은 사명감
한겨레신문사 야구 동아리 ‘야구하니’의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기자에게 김성근(71) 고양 원더스 감독은 “테스트받으러 왔느냐”고 농담을 던졌다. 고양 원더스는 프로팀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을 모아 2011년 12월 창단한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구단이다. 고양 원더스가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고양 국가대표 야구장’에는 야구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린 선수들이 종종 찾아온다. 이런 선수들이 김 감독의 지도를 받아 지난해 5명, 올해 12명 등 모두 17명이나 프로팀에 진출했다. 이달 들어서도 포수 오두철(28) 선수가 기아(KIA)에 입단했고, 좌완투수 여정호(29) 선수는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김성근의 돌직구 "'야신'은 없다" [한겨레談 4]
새달 5일 취임 2돌을 맞는 김 감독은 “처음에 들어올 때는 ‘과연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다가 프로팀에 떠나보낼 때는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하는 흐뭇한 마음이 든다. 딸 시집보내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선수들에게 김 감독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노력 여하, 생각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열정을 가지고 파고들면 얼마든지 길은 있다”고도 했다.
김 감독은 사회구조적 모순 때문에 패자가 되는 젊은이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사회의 모순을 의식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핑계 대고 의존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든다. 사회가 어떻게 되든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의지가 관건”이라고 충고했다. 27살 때인 1969년 마산상고 감독을 시작으로 44년째 야구감독을 하고 있는 그는 “감독 하면서 12번 잘렸지만 한번도 남에게 기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김 감독은 44년 감독생활 중 세번 눈물을 흘렸다. 충암고 감독이던 1977년 신일고와의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8강전, 엘지(LG) 감독이던 2002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 그리고 에스케이(SK) 감독이던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이다. 세 경기 모두 상대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졌다.
김 감독은 이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경기로 1977년 황금사자기 8강전을 꼽았다. 당시 신생팀 충암고는 지방에서 선수를 끌어모았는데, 전국대회 4강에 들어야 대학 진학 자격이 주어졌다. 충암고는 9회초까지 투수 기세봉의 노히트노런을 앞세워 2-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9회말 신일고 김남수에게 역전 3점 홈런을 맞고 2-3으로 졌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모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응암동 학교까지 오는 버스는 마치 영구차 같았다. 나도 그때 버스 안에서 많이 울었다. 나를 많이 성장시켜준 경기였다”고 회고했다. 충암고는 한달 뒤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 8강전에서 신일고를 다시 만나 ‘복수’에 성공했고 팀 창단 후 첫 우승까지 차지했다. “선수들이 실의에 빠지기보다는 이를 악물고 더욱 열심히 훈련한 결과였다.”
김 감독의 별명은 잘 알려진 대로 ‘야신’이다. 하지만 그는 “야신은 없다. 언론에서 ‘야신’이니 ‘야통’이니 하면서 너무 남발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태평양 감독 시절 붙은 ‘잠자리 눈깔’이라는 별명이 좋다고 했다. “리더는 세심한 부분까지 어마어마한 주의력을 가지고 포착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야구는 종종 인생에 비유된다. 김 감독은 지난달 열린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했다.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해줬다. 모든 팀이 상대팀 분석이나 순간적인 판단 등 준비가 부실했다. 그런데도 조금 유리할 때 승리에 도취해 승자가 패자가 되고 패자가 승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김 감독이 꼽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일까. 그는 “사명감”이라고 말했다. “리더는 사리사욕에서 벗어나 사명감을 가지고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해명과 변명, 책임 전가가 많은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
기자와의 대화를 마친 뒤 그는 다시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자리 눈’으로 선수들을 바라봤다. ☞동영상은 한겨레티브이(www.hanitv.com)
글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사진 박성영 한겨레티브이 기술감독 kidpak@hani.co.kr
아래는 인터뷰 전문
요즘 제자들이 많이 찾아오죠?
“가끔 찾아와요. 시즌도 끝났으니까 종종 찾아오죠.”
- 제자들 활약을 보면 흐뭇하실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떤 제자 생각이 가장 많이 나세요?
“가르친 선수들이 다 똑같아요. 그 중에는 스타도 있고, 그렇지 못한 선수들도 있죠. 다들 가지고 오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 이상훈 투수코치, 김재현·채병용 선수 등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때 내가 너무 심하게 연습을 시켜서 평생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 혹독하게 훈련했던 감독을 뭐가 좋다고 찾아올까요?
“혹독했겠죠. 그러나 진실이라는 것은 그 순간보다는 지나간 다음에 느낀 점이 더 많지 않나 싶어요.”
# “혹독한 순간, 진실은 그 다음 느끼는 것”
- 채병용 선수 아기 돌잔치에 못 가서 아기 사진을 감독실에 두고 보셨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내가 만난 프로야구 선수 중에서 채병용 선수가 가장 남자답지 않나 싶어요. 여러 선수가 있지만, 태도를 칭찬하고 싶은 선수에요. 희생하더라도 리더를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선수에요. 내가 에스케이 와이번스 감독할 때, 채병용 선수를 무리하게 등판시켜서 진 빚이 많아요.”
- 현역시절, 어깨부상 때문에 은퇴를 했는데. 그런 점에서 더 마음이 아프신 건가요?
“내가 아팠던 것을 후회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그 시절은 그럴 수밖에 없었죠. 채병용 선수는 우승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팀을 위해, 감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어요. 감독 입장에서 이런 선수와 함께하는 것은 굉장히 명예롭고, 보람 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 요즘, 고양원더스 선수들이 프로팀으로 많이 가고 있습니다. ‘프로 사관학교’라는 별명도 얻었는데요. 선수들 올 때, 프로에 갈 때의 기분은 어떤가요?
“처음 선수들이 고양원더스에 들어올 때, ‘이 선수가 될까’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어요. 반대로 보낼 때는 ‘이 선수가 이렇게 컸구나’ 싶죠. 선수를 프로팀으로 보낼 때는 시집 보낸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정말 안 될 것 같던 선수가 이렇게까지 발전했구나 싶은 생각에 그렇죠.”
# “힘들다고 생각하면 거기서 승부는 끝난다”
- 요즘 감독님을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특별한 것은 없어요. 단 하나, 고양원더스 선수들을 볼 때 ‘이 선수가 이렇게 자랐구나. 이제 프로로 보내도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흐뭇한 마음이 들지요. 또 최근에 이곳저곳 강의를 제법 다니는데, 듣는 분들이 ‘뭔가 느껴졌다’고 말해요. 야구인 김성근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외면하는 운동선수가 이 사회에 어떤 방향을 제시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그럴까요? 그런 순간순간마다 즐거움이 있어요.”
- 한계를 못 넘고 그만 둔 선수도 많죠?
“힘들다고 인식하면 이미 거기서 승부가 끝났다고 봐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런 상황 자체를 즐거워해야 하는데, 즐기면서 해야 성장할 수 있어요. 무슨 일이든, 일이 즐거움을 줘야지, 괴롭다면 어느 분야에서도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 가능성이 정말 의문스러운 선수에게 어떤 점을 가장 강조하세요?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은 그 사람의 생각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파고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과거에 안 된 것은 생각과 방법이 나쁜 것이었고, 시작하는 모습이나 태도가 바뀌면 얼마든지 길이 있다고 가르쳐요. 대신, 연습할 때 우리는 한계를 설정하지 않으니까 한명씩 몰아가요. 그 속에서 사람으로서, 선수로서 조금씩 수준(레벨업)이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1년 뒤에 프로로 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선수가 되는 거죠.”
# “야신은 없다, 리더라면 잠자리 눈깔을 가져야 한다”
- ‘야신’(야구의 신)보다 ‘잠자리 눈’이라는 별명이 더 좋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뭔가요?
“야신은 있을 수 없는 말이에요. 매스컴들이 너무 남발하는 것 같아요. 잠자리 눈이라고 하는 것도 눈이 아니라 ‘눈깔’이 맞아요. 잠자리 눈깔이 리더에게 가장 적합한 별명이 아닌가 싶어요. 리더는 세심한 부분에 어마어마한 주의력을 가지고 봐야 하니까…. 1센티미터 움직임도 포착하고 있어야 하거든요. 또 어떤 순간은 360도를 볼 수 있는 신경과 눈을 가지고 있어야 리더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잠자리 눈깔’을 갖고 있는 리더는 운동장 전체를 긴장감 돌게 하는 거니까 나는 그게 더 좋다고 봐요.”
- 그 별명은 언제 별명인가요?
“태평양 돌핀스 감독(89~90년)할 때, 붙여진 별명이에요. 그 전에는 ‘악마’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선수들이 될 때까지 연습을 시키니까, 선수 입장에서 볼 때는 나를 사람으로 안 봤죠.(웃음)”
- 약한 팀 감독만 맡았는데도 역대 최다승 2위입니다. 약팀을 강팀으로 만든 비결은 무엇입니까?
“약한 게 아니라, 약했던 원인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원인을 알고, 그것을 창조하는 길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어느 팀이든 간에 어느 선수든 간에 프로팀에 들어올 때는 뭔가 좋은 장점이 있어요. 김성근 야구는 ‘승리에 연연한다’, ‘더럽다’, ‘일본식이다’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가는 팀마다 야구를 다 바꿨어요. 감독은 그 팀의 능력 자체를 보고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 쌍방울 레이더스(96~99년)는 ‘1%의 가능성으로 99%를 이길 수 있다’는 비상식적인 발상 속에서 선수들에게 주문을 했어요. 전략도 그렇고, 선수를 만드는 것도 그랬고요. 나는 선수들의 한계를 무시하고 들어가니까, 그렇게 하면 얼마든지 팀을 바꾸고, 선수도 바꿀 수 있다고 봐요.”
# “약한 게 아니라 약했던 원인이 있을 뿐”
- 지금까지 6개팀 프로 감독을 지냈습니다. 이 중 가장 애착 가고, 가르친 만큼 결과가 나온 팀은 어떤 팀인가요?
“어느 팀이든 시작할 때, 어떤 결과를 계산해본 적이 없어요. 해놓고 보니 그런 결과가 나왔을 뿐이지요. 고생했다고 하면 쌍방울 레이더스 때, 그러나 거꾸로 내가 야구를 많이 배우지 않았나 싶어요. 그 당시에 쌍방울은 천원짜리 야구를 했으니까. 천원 짜리로 해태·삼성·현대·두산·엘지 등 만원 짜리 팀을 이겨야 했으니까요. 천원으로 이길 방법을 고민해야 했으니까, 쌍방울 감독하면서 스스로 많이 성장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선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을 그때 깊이 이해했어요. 쌍방울 때는 선수도 없고, 지원도 나빴어요. 없는 살림 속에서 그런 결과를 만들었으니까 기억에 남아요. 좋은 이미지는 역시 에스케이 와이번스(07~11년) 때가 아닌가 싶어요. 아무래도 좋은 결과를 냈으니까.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리더의 손에 걸려있다고 생각합니다.”
- 감독으로서 세 번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의외로 나는 눈물이 많아요. 평상시에는 보는 눈이 많아서 그렇다고 할까요? 티브이 보다가 혼자 울 때도 많아요. 옆에 누가 있으면 안 울지만, 누가 없으면 눈물 흘릴 때가 있어요.”
# 1977년 충암고의 8강 탈락, 잊을 수 없는 기억
- 그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눈물은 언제였나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충암고 야구부(76~79년) 감독할 때였어요. 그 장면 자체는 영화 같아서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 모인 선수들이 전부 대구에서 올라왔어요. 오합지졸 젊은 학생들이 김성근이라는 감독을 믿고, 대학이라는 길을 찾아서 서울로 올라온 건데…. 충암고 야구부가 황금사자기 8강에서 신일고에 지는 바람에 꿈이 날아가 버렸죠. 벤치뿐만 아니라 야구장 각자 포지션에서 선수들이 우느라 일어나질 못하더라고요. 그 아이들을 달래느라 한참 시간이 걸렸죠. 동대문 야구장에서 응암동 학교까지 갈 때, 마치 영구차 지나가듯이 선수들이 전부 울더라고요. 그때 나도 많이 울었어요. 선수들이 하도 우니까 미안했고, 나를 믿고 들어온 아이들인데, 그 후 한 달 동안 어마어마하게 일들이 많았죠. 그때 기억이 많이 남아요.”
- 1970년, 마산상고 야구부 감독을 시작으로 40년 넘게 야구감독을 하셨는데. 다시 태어나도 야구감독을 하시겠어요?
“사람들은 내게 야구밖에 모른다고 했어요. 비난에 가까운 말인데 나는 ‘야구 밖에 모른다.’ 말 자체가 가장 좋아요. 내가 좋아하는 한길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좋아요. 만약 한국에 영주 귀국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이미 죽지 않았을까 싶어요. 야구라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순간순간에 긴장감을 줬고, 인생 자체를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보냈어요. 야구가 없었다면, 내 삶은 아무 목적도 없고 금방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야구가 있어서 이제껏 버티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 지난 플레이오프 아쉬운 점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그런 야구를 보면서 관중들이 어떤 메시지를 받았으면 하는지요?
“야구는 승패가 있는데, 내용은 없다, 이 말을 들으면 야구 감독으로서 슬퍼요. 야구가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흥미롭지 않은 인생 속에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지 않은가 싶어서지요. 지난 플레이 오프를 볼 때, 준비의 중요성도 절실히 느꼈어요. 준비를 했다면, 패자가 승자가 됐을 거예요. 아마 압도적인 승자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한 가지는 좋을 때, 유리할 때 그것에 도취되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가 싶어요. 그런 모습이 포스트 시즌에서 여러 번 보였어요.”
# “이 시대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명감”
“남에게 책임을 전가, 세상살이 파멸하는 것” - 한국사회는 개인의 탓이라기보다 구조에 의한 사회적 패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사회가 어떻게 되든, 조직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흔들리는 의지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사회는 사회고, 나는 나라고 봐요. 내가 움직이고 있다면, 사회가 움직이는 게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사회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약한 모습이지 않은가 싶어요.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의지로 살아나가야죠. 사회나 주위를 의식하는 것은 마음 한구석에 의존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거예요. 나는 감독을 열 두번이나 잘렸지만, 누구한테 기대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적이 많아요. 누구한테 기대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고 싶지는 않아요.” - 요즘 김성근 감독의 ‘야신의 리더십’이 화제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명감 아닌가 싶어요. 조직이 원하는 결과가 뭔지, 그것에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없애고, 조직에 몸을 받칠 수 있어야지요. 사리사욕에서 벗어나서 조직과 선수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전력투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사명감 있는 리더가 아닌가 싶어요. 요즘 세상에는 해명이 많고 변명이 많고, 책임 전환도 많아요. 그런 것을 하면 리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봐요. 그렇게 살아야 자기 자리라는 것을 찾을 수 있어요. 자기 자리를 가지려고 남에게 책임을 돌리면 세상살이에서 파멸하는 사람이 됩니다.” 정리 <한겨레티브이>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남에게 책임을 전가, 세상살이 파멸하는 것” - 한국사회는 개인의 탓이라기보다 구조에 의한 사회적 패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사회가 어떻게 되든, 조직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흔들리는 의지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사회는 사회고, 나는 나라고 봐요. 내가 움직이고 있다면, 사회가 움직이는 게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사회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약한 모습이지 않은가 싶어요.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의지로 살아나가야죠. 사회나 주위를 의식하는 것은 마음 한구석에 의존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거예요. 나는 감독을 열 두번이나 잘렸지만, 누구한테 기대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적이 많아요. 누구한테 기대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고 싶지는 않아요.” - 요즘 김성근 감독의 ‘야신의 리더십’이 화제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명감 아닌가 싶어요. 조직이 원하는 결과가 뭔지, 그것에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없애고, 조직에 몸을 받칠 수 있어야지요. 사리사욕에서 벗어나서 조직과 선수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전력투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사명감 있는 리더가 아닌가 싶어요. 요즘 세상에는 해명이 많고 변명이 많고, 책임 전환도 많아요. 그런 것을 하면 리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봐요. 그렇게 살아야 자기 자리라는 것을 찾을 수 있어요. 자기 자리를 가지려고 남에게 책임을 돌리면 세상살이에서 파멸하는 사람이 됩니다.” 정리 <한겨레티브이>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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