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8 19:16
수정 : 2014.05.09 02:04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일곱 살 아이에게 또 혼이 났다.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길을 건넜다고 야단법석이다. 한적한 길에 차가 오지 않아 건너도 되겠구나 싶었는데 아이는 “엄마 실수!”라며 지적질을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으레 행했던 일들이 순간 부끄러워진다. 아이들에게 “빨간불은 멈춰, 초록불은 건너”라는 노래로 규칙을 가르쳐 주면서도, 스스로는 평소 몸에 밴 습관대로 편리함만 좇는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참 나쁜 어른이다. 착한 어른 되기 연습이 필요한 때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말의 핵심은 ‘생각이 변하면 인생이 바뀐다’지만, 역으로 보면 습관이 바뀌지 않는 한 생각도 바뀌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나이테처럼 켜켜이 세월의 때를 품고서 몸과 마음에 끈끈하게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게 습관이라는 놈이니까. 몸과 마음에 밴 나쁜 습관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반복적 행위밖에 답이 없을 터. 하지만 ‘반복’이나 ‘연습’만큼 지루한 단어도 없다. 일정 시간이 반드시 담보되어야 하고 꾸준함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스케이(SK) 3루수 최정을 보면 반복 훈련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2006년 말 최정은 김성근 감독의 지휘 아래서 탈진할 때까지, 그리고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공을 받았다. 고교 2학년 때 이미 이영민 타격상을 받으며 방망이 능력은 최고로 인정받았지만 3루 수비에서는 낙제점에 가까웠던 그였다. 공을 받으면 글러브에서 튕겨 나가거나 1루 송구는 악송구가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야구 어른’(김성근 감독)의 지도와 스스로의 노력 속에 국가대표 3루수로 거듭났다.
눈여겨볼 사실은 최근 들어 최정의 수비 실책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13 시즌 개인 최다실책(19개)을 기록했던 최정은 올해 벌써 6개의 실책(8일 현재)을 범했다. 리그 3번째(공동)로 많은 실책이다. 예전에는 거뜬히 잡아냈던 타구도 놓칠 때가 있다. 김성근 감독은 “최정은 공을 잡을 때 글러브와 타구가 부닥치는 경우가 많았다. 순간적으로 공을 글러브 안에서 튕겨서 죽여줘야 하는데, 반복 연습을 하면서 스스로 그 부분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보면 그게 사라진 것 같다. 또 양 무릎이 아닌 글러브를 갖고서만 공을 쫓아다닌다”며 안타까워했다.
비단 최정만이 아니다. 에스케이가 한 경기 역대 최다인 8실책을 쏟아내는 등 돌림병처럼 전 구단이 어이없는 실책을 쏟아내고 있다. 실책은 대량 실점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는 리그 전체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각 구단이 스프링캠프 때마다 지옥훈련을 부르짖지만 정작 ‘질’보다는 ‘양’에만 초점을 맞췄던 게 아닌가 싶다. 머리로 깨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훈련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김성근 감독은 “연습이라는 것은 곧 준비이며, 더 늦기 전에 구단들이 왜 반복 연습이 중요한지를 깨달아야만 한다”고 했다. 세월호도 나쁜 습관에 의한 준비 부족이 가져온 대형 참사 아니던가.
아들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우리 식구 자고 나면 주고받는 말~”(‘참 좋은 말’)로 가사가 이어진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때부터 아이는 잠에서 깨면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을 한다. 세월이 하 수상한 이때, 참 좋은 습관 하나가 생겼다. 아이도, 야구도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이어가게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어른들(혹은 지도자들)의 몫일 테지만
.whizzer4@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