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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과 선수들이 11월 초부터 시작된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장에서 펑고 훈련(배트로 쳐준 타구를 이용한 수비연습)을 하고 있다. 노감독은 직접 배트를 들었고 선수들은 나가떨어졌다. 한화 이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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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양희의 야구광
김성근 감독의 스파르타 훈련
▶ 김양희 맨 처음 야구를 좋아했던 이유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쓴 일기장을 보면 꼭 그날의 야구 스코어가 적혀 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제주도에서 서울로 왔을 때도 맨 먼저 가고팠던 곳이 잠실야구장이었다. 혼자서 잠실야구장 구석에 앉아 캔맥주 들이켜면서 경기를 보곤 했다. 지금은 휴일에 아이들과 같이 야구장을 찾고는한다. 어쩌다 아들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야구 동화도 썼다. ‘김창금의 축구광’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번갈아 연재된다.
굴리고 또 굴린다, 공 하나에 다음은 없나니
“죽겠습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 중인 한화 이글스 선수들의 카카오톡을 통한 반응이다. 이마저도 나중에는 ‘…’로 바뀐다. 휴식 없이 계속 반복되는 혹독한 훈련에 할 말마저 잃어가는 듯하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기에 그럴까. 그리고 ‘야신’은 왜 중·고교 아마추어 선수도 아닌 프로 선수들을 굴리고, 또 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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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김회성 선수가 훈련 중 함성을 지르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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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과 선수들이 11월 초부터 시작된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장에서 펑고 훈련(배트로 쳐준 타구를 이용한 수비연습)을 하고 있다. 노감독은 직접 배트를 들었고 선수들은 나가떨어졌다. 한화 이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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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10분부터, 점심밥도 짬짬이
왼손 다치면 오른손에 글러브
굴린다…굴린다…굴린다
저녁밥 먹고도 이어지는 훈련 ‘비관론의 리더십’은
막무가내 스파르타 아니다
훈련 중 감독의 ‘작은 강연’
신뢰와 소통, 진한 동지애가
하위팀의 실력 상승 불러와 훈련 중에 답을 찾는다 이효봉 해설위원은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운동장 30바퀴를 뛰라고 주문하면 선수들에게는 불만만 쌓여갈 것이다. 하지만 운동장을 왜 뛰어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을 해주면 분위기부터가 달라진다. 훈련의 전제조건은 소통”이라고 했다. 머리로 납득된 훈련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진영은 “야간훈련 때 공을 1000개 치고, 하루 200개 이상 쇼트바운드 공 처리 대비 훈련을 했었다. 선수들이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성과는 많이 달라졌는데, 훈련이 많았던 것은 훈련 안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으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호준 또한 “본인이 훈련기간 내내 시간 때우기로 하면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고 그 속에서 생각하고 만들고 찾아내야만 한다. 더불어 감독님은 ‘우린 남들보다 두 배 이상 노력했기 때문에 분명 성적이 날 거야’라는 인식도 같이 심어주셨다”고 했다. 김 감독의 훈련 효과가 더욱 극대화되는 이유는, 김 감독이 수비 훈련 때 직접 펑고를 치거나 티볼(T자 모양의 대 위에 공을 올려놓고 쳐주는 방식)을 올려주는 데서도 기인하다. 감독이 코치 영역을 침범한다고도 볼 수 있으나 나이 지긋한 감독이 하루 1000개씩 공을 때려내고 티박스에서 공을 던져주는데 선수들이 꾀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프로에서 감독이 펑고 배트를 치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장면이다. 이효봉 해설위원은 “펑고라는 것이 받는 사람도 힘들지만 치는 사람도 아주 힘들다. 노감독이 솔선수범해서 맨 앞에서 움직이는데 코치, 선수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 훈련을 돕기 위한 몸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 수십 개씩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아령을 들고 근력 운동을 한다. 비가 와도, 어깨가 아파도 김 감독은 선수들과 늘 함께한다. 군대식 훈련량에 부정적인 시선도 물론 있다. 선수단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전이든비주전이든 똑같은 기준으로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한화에서도 이미 프로에서 검증이 끝난 김태균, 정근우가 갓 입단한 고졸 신인들과 함께 그라운드 위에서 똑같이 뒹군다. 하지만 김 감독에게 과거의 성과는 그저 ‘흘러간 물’일 뿐이다. 안주는 곧 퇴보라고 생각한다. 현 상황에 만족하지 말고 지금 위치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라고 채찍질을 한다. 한 은퇴한 선수는 “김 감독은 모든 선수들을 제로 베이스에서 보기 때문에 기존에 프로에서 잘했던 선수들은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의 훈련 방식을 따라가지 않으면 경기 때 기용되지 않는다. 공부 잘하는 학생인데 매일 과외시키고 쉬지도 못하게 하는 식으로, 프로에서 몇 년간 뛰어온 선수와 신인 선수에게 똑같은 훈련량을 주문하는 것은 좀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훈련량은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 또한 “훈련이 양적, 질적으로 괜찮아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있었다.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도움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 감독 밑에서 몇 년간의 호된 훈련을 견딘 선수들 사이에서는 진한 동지애가 생긴다는 점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사선을 같이 넘어온 이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끈끈한 전우애라고나 할까. 에프에이(FA) 계약으로 에스케이에서 롯데로 이적한 정대현은 “하루 종일 오직 동료들과 야구만 하면서 저절로 정이 두터워진 것 같다”고 풀이했다. 선수들은 “다른 팀 훈련 얘기를 들으면 경기에서 졌을 때 분한 면이 없지 않았다”(이호준)거나 “우리가 겨울 동안 얼마나 힘들게 훈련했는지 돌아보면 단내 나게 훈련한 게 억울해서라도 경기에서 절대 지고 싶지 않다”(정근우)고 말한다. 그렇다면 많은 훈련량이 다음 시즌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을까. 김 감독이 부임하기 직전과 직후의 팀 성적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승률 3~4할의 팀을 1년 만에 승률 5할 이상의 팀으로 올려놨다. 성적이 밑바닥에 있는 팀일수록 더욱 탁월했다. 첫 프로 사령탑으로 부임했던 오비(OB·두산 전신)는 전년도에 승률 0.444(5위)를 기록했으나 김 감독이 지휘한 첫해(1984년) 승률이 0.586(3위)으로 뛰었다. 1988년 팀 승률 0.319(7위·꼴찌)였던 태평양은 이듬해 승률 0.533(3위)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쌍방울 또한 김 감독이 지휘한 첫해(1996년)에 전년도 승률 0.369(8위·꼴찌)의 치욕을 씻고 정규리그 2위(승률 0.563)로 당당히 가을무대에 올랐다. 2002년 엘지 또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에스케이도 부임 직전 승률이 0.480(6위·2006년)이었다.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하던 삼성(1991년)에서만 전후 승률이 비슷했다. 소모품 선수는 없다 김성근 감독은 스스로 “비관론의 리더십”을 이야기한다. 늘 최악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최악을 생각해야만 남보다 더 치열하게 준비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훈련을 독려하면서 1·2군 선수들 사이의 실력차를 줄이려고 한다. 경기 때 강한 승부사적 모습을 보이는 것도 훈련량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한계 그 이상까지 혹독하게 몰아붙인 선수들에게 ‘승리’라는 보상을 해주기 위해 김 감독은 치밀하게 전략을 짜내고 끝까지 악착같이 상대 팀을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때로는 냉혹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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