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29 21:05
수정 : 2015.04.29 21:05
윤형중 기자의 풀카운트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보이는 현상 중 하나는 마무리투수보다 중간계투가 더 강하다는 점이다. 삼성의 안지만, 엘지의 이동현, 넥센의 조상우가 팀의 마무리투수인 임창용, 봉중근, 손승락보다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복귀해 블론세이브를 9개 기록한 임창용은 시즌 전 “올해 블론세이브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다짐했지만, 지키기가 쉽지 않다. 임창용은 지난 28일 엘지와의 경기에서 9회에만 5점을 내주며 시즌 두 번째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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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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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에게 상처를 안긴 엘지도 마무리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9회초 임창용을 두들겨 역전에 성공한 엘지는 9회말에 주전 마무리인 봉중근 대신 이동현을 내세웠다. 이동현이 삼성의 타선을 삼자범퇴로 막으며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했지만, 양상문 엘지 감독은 여전히 “우리 팀의 마무리는 봉중근”이라고 강조한다.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 봉중근의 부진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평균자책점이 21.21에 달하고, 마무리투수에게 중요한 지표인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이 4.5, 삼진·볼넷 비율(SO/BB)이 0.67이다. 한 이닝당 4.5명의 주자를 내보내고, 삼진보다 볼넷이 더 많았다는 의미다. 봉중근이 등판하면 9회에 역전 승부가 벌어진다는 의미에서 ‘봉중극장’이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중간투수들이 마무리보다 강한 것은 올해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안지만·이동현·조상우가 임창용·봉중근·손승락보다 평균자책점, 이닝당 출루허용률 부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게다가 지난해 넥센에는 홀드왕인 한현희도 있었다. 일부에선 선발투수들의 이닝 소화력이 점점 떨어지고, 불펜야구 양상을 보이는 국내 리그에서 9회보다 6, 7, 8회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승부에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도 불펜의 에이스가 마무리를 맡는 것은 메이저리그나 일본, 국내 리그에서도 정설로 통한다.
백전노장 봉중근·임창용 부진에도
감독들은 왜 보직 변경 안할까요
전문가는 정신력·경험 중시하지만
이름값에 의존하는 건 아닌지…
MLB선 중도 교체로 성공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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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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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감독들은 마무리 교체 카드를 꺼내지 않는 걸까. 전문가들은 마무리투수에겐 ‘구위’보다 중요한 자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를 이용철 <한국방송> 해설위원은 “마무리투수는 구위가 아니라 심장으로 승부한다”고 표현한다. 최원호 <에스비에스> 해설위원은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구위보단 대담함·배짱 등 정신력과 경험이 마무리투수에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팀을 위기에서 건져내고 승리를 책임져야 하는 속성상 중간에서 잘하던 투수들이라도 마무리를 맡기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용철 해설위원은 “마무리 교체는 팀 전체의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만일 교체한 투수가 부진하면 선수단 전체가 동요한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는 어떨까. 구단이 30개나 있기 때문에 각양각색이다. 송재우 <문화방송>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메이저리그도 기본적으로 마무리 교체에 신중하다. 구단마다 스타일이 다르지만, 부진이 길어지고 대안이 있다면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 교체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적절한 시기의 마무리 교체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 적도 있다. 류현진이 처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2012년, 엘에이 다저스의 주전 마무리 브랜던 리그는 6월까지 블론세이브 4개를 기록하며 부진했다. 돈 매팅리 감독은 7월 켄리 얀선으로 마무리를 교체했고, 이후 류현진의 승리를 불펜이 날리는 일도 확연히 줄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샌프란시스코 역시 주전 마무리였던 세르히오 로모가 6월30일부로 중간계투를 맡고, 산티아고 카시야가 마무리 역할을 새로 맡았다. 적시에 마무리 교체는 우승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아직 4월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마무리 교체를 논하기엔 다소 이를 수 있다. 게다가 봉중근과 임창용은 국가대표뿐 아니라 미국·일본 리그에서도 활약하면서 한국 야구계에 족적을 남긴 선수들이다. 봉중근은 한때 선발을 원했지만, 팀 사정상 마무리를 맡기도 했고, 임창용은 메이저리그의 미련을 버리고 삼성에 복귀했다. 팀에서는 나름 부채의식이 있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부진이 계속되고 이동현·안지만 등 중간투수들의 활약이 이어져도 그들이 봉중근이고 임창용이기 때문에 마무리 자리를 유지해야 할까. 명성이 성적과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마침 한국 프로야구에서 새로 떠오르는 스타 투수가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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