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3달째’ 강정호가 아직도 적응기라고?

박승현의 MLB 리포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석달째를 맞고 있습니다. 팀은 8일까지 56경기를 치렀고, 강정호는 41경기에 나섰습니다. 이 중 선발로는 딱 30경기, 그것도 유격수와 3루수로 절반씩 나누어서 출장했습니다. 일정에서 보듯 남은 경기가 100경기도 넘습니다.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첫 석달. 팬들은 ‘적응하는 시기’라고 생각하거나 ‘잘 적응하라’고 응원하고 계실 것입니다.

강정호의 생각은 어떨까요. 지난 주 강정호가 샌프란시스코와 원정경기를 치르는 기간에 미국의 전국지인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메이저리그에서는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등을 알고 싶어한다’는 전언이 있자, 혼잣말 처럼 “아직도 적응 이야기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아직도’라는 표현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받았던 질문이기에 그런 반응이 있기도 했겠지만 ‘이제 그런 질문 받을 때가 아니다’라는 의미로도 읽혔기 때문입니다.

강정호를 따라 다니다 보면 사실 ‘신입의 어색함’ 같은 것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자신만의 일정에 따라 또 팀의 일정을 쫓아 자연스럽게 경기를 준비하고 경기에 나섭니다. 잠깐 동안의 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료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현지 기자들의 질문에 답도 해줍니다. 통역의 도움도 받지만 가능하면 스스로 의사소통을 해냅니다. 션 로드리게스 같은 선수는 강정호에게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도 가르쳐 줍니다. 실제로 피츠버그를 취재하는 현지 텔레비전 방송의 기자는 “강정호가 처음 보다 영어 실력이 엄청 늘었다”는 말도 기자에게 해주었습니다.

경기장 밖에서도 강정호는 자신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먹고 자고 필요한 물건 사고… 특별히 문화차이를 느낀 것은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 “야식은 좀 불편하다. 밤 10시면 문 여는 곳이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경기에서의 강정호의 모습은 여러분들도 느끼시는대로 입니다. 5월 들어 선발 출장하는 경기수가 크게 늘었고, 피츠버그 팀 타자들이 총체적인 난국을 겪고 있을 때 좋은 기량을 발휘해 팀이 상승세로 돌아서는데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이번 원정 10연전의 마지막 경기였던 8일(한국시간) 애틀랜타 브레이브와 경기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팀이 3점째를 올리게 해 준 적시타에 앞서 강정호는 4회 유격수 직선타로 아웃됐습니다. 볼 3개가 연속으로 들어온 뒤 4구째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볼을 망설임 없이 잡아당겼습니다. 이전에는 같은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하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이날은 공격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 잘 맞은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가서 아쉽기는 했지만 여느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다른 바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강정호는 5월31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 선발에서 제외됐습니다. 자신은 이날도 선발로 나가는 것으로 사전에 통보받았던 모양인데 조금은 갑작스런 결정이었습니다. 이날 클린트 허들 감독은 “앞으로 강정호는 5, 6경기 연속해서 출장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발언은 현재까지는 식언이 됐습니다. 이후 강정호의 선발 출장과 벤치대기 주기가 짧아졌기 때문입니다.

미국 피츠버그 파이리츠 구단이 지난 1월 16일(현지시각) 강정호와 ‘4+1년’ 계약에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강정호의 사진을 구단 트위터에 올렸다. 피츠버그 파이리츠 트위터 갈무리

물론 짐작할 만한 이유는 있습니다. 타격 부진에 시달렸던 유격수 조디 머서가 다시 살아났고, 3루수 조시 해리슨의 활약도 꾸준합니다. 4월 1할대 타율에 머물렀던 앤드류 매커친이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전체적인 타선 역시 짜임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허들 감독이 ‘공정한 기회’와 함께 수비능력까지 고려하는 라인업을 짜도록 만들 수 있는 배경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머서의 발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머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시즌 첫 홈런을 날렸던 지난 3일 “강정호와는 경쟁이다. 서로 잘 되기 위해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강정호에게는 적응이 아닌 경쟁이 더 중요한 단어인 듯 합니다.

박승현 로스앤젤레스/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