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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23 15:24 수정 : 2015.06.23 15:24

[한겨레21]
장종훈 떠올리게 하는 롯데 오승택, 어색한 포지션 맡은 뒤 실책 쏟아내자 2군행
과연 감독의 올바른 매니징인가

태초에 장종훈이 있었다. 이승엽의 등장 전까지 한국 야구 홈런의 역사는 장종훈의 오른쪽 타석에서 쓰인 것들이었다. 출범 이후 아마추어 야구 우등생들로 운영되던 한국 프로야구에서 ‘고졸 연습생 신화’라는 단어의 기원도 장종훈에서 비롯되었다. ‘연봉’ 300만원을 받고 입단한 고졸 연습생 유격수는 입단 5년 만에 타격 3관왕을 차지했고 최초의 40홈런 시대를 열었다. 통산 340개의 홈런은 2009년 양준혁에 의해 경신될 때까지 프로야구 개인 최다 홈런 기록이었으며 장종훈의 35번은 이글스의 영구결번이 되었다.

2010년에 입단한 고졸 5년차 유격수, 롯데의 오승택(사진)은 2015년 5월 말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였다. LG전 3연타석 홈런을 비롯해 일주일 동안 5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다. 같은 고졸 유격수이자, 충북 청주 출신(장종훈 세광고, 오승택 청원고)에 186cm의 키마저 같아, 팬들은 1990년대 장종훈의 재림을 보는 듯했다. 입단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그는 5년차가 되던 해 장종훈을 만나며 드디어 오랜 잠재력을 폭발시켰고, 롯데 팬들은 대형 유격수의 탄생에 환호했다.

감독은 욕심이 생겼다. 문규현이라는 준수한 유격수가 있던 롯데는, 아직 유격수 수비가 불안한 오승택의 타격을 살리기 위해, 주전의 부상으로 공석이던 1루수에 오승택을 자주 출전시켰다. 6월4일, 오승택은 어색한 포지션에서 패배에 치명타가 된 2개의 실책을 저질렀다. 1루수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행한 무리한 포지션 변경의 결과였다. 연속된 실책 이후 붉게 상기돼 위축된 오승택의 표정엔 일주일 전에 불타는 방망이를 휘두르던 신성의 당당함은 사라져 있었다.

일반인들은 야구 선수들의 실책에 지나치게 엄격하다. 하지만 내야수를 향해 날아오는 땅볼을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엄청난 속도로 회전이 걸려 내 몸을 향해 날아오는 야구공은 받아내지 못하면 그대로 흉기가 된다. 세상에 평범한 타구란 없다. 그것이 평범한 타구로 보이는 것은 한 포지션에서 프로 선수들이 십수 년간 막아내고 처리해보며 습득한 장인적 기술 때문이다. 야구에 포지션이 존재하는 것은, 포지션마다 날아오는 타구의 질과 종류, 선수가 밟아야 하는 스텝이 다르므로, 그 포지션에 특화된 장인을 기르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야수들에게 포수를 시키면 투수의 공을 제대로 받아내지도 못한다.

실책 다음날, 오승택은 2군으로 강등되었다. 감독은 “실책이 문제가 아니라 프로 선수로서의 기본이 문제”라고 말했다. ‘문책성’ 2군행의 성격이 짙다. 불과 일주일 전,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였던 오승택은 실책의 트라우마만 가득 안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롯데의 팀 타율은 10개 구단 중 꼴찌가 되었고, 팀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여타 종목은 감독을 헤드코치(Head coach)라 표현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프로야구의 감독을 매니저(Manager)라 표기한다. 선수를 관리하고 키워내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것이 매니저의 역할이다. 감독의 욕심으로 인한 무리한 포지션 변경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 선수에게 책임을 물어 2군으로 보내는 것이 올바른 매니징일까? 선수로서 가장 뜨거웠던 시절로 기억될 수 있던 시간이, 잔인한 트라우마의 기억으로 남아버린 24살 청년은 마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

2015년 시즌 전, ‘이글스 원팀맨’이었던 장종훈은 롯데 자이언츠의 타격코치로 영입되었다. ‘홈런왕이라서가 아니라 연습생 신화의 주역이라서’가 롯데 자이언츠의 영입 이유다. 밑바닥의 연습생에서 시작해 영구결번의 별이 될 때까지 한 선수가 만들어온 전투의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5년 전의 장종훈은, 이글스의 4번 타자로 키워내기 위한 철저한 관리와 배려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지금 코치로 롯데의 더그아웃에 있는 장종훈은, 오승택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멘털게임이라는 야구에서 프로야구 감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당장의 성적에 연연치 않으며, 선수의 트라우마를 관리하는 것이다. 젊은 선수의 미래는 대체로 트라우마의 총량에 반비례한다. 어디 야구만 그렇겠는가.

김준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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