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8.17 18:19
수정 : 2015.08.17 19:10
윤형중 기자의 풀카운트
“꼭 지켜야 하는 경기에선 필승조를 낼 수밖에 없죠. 그런데 한화 필승조는 경기 초반이나 크게 이기는 경기에도 나오잖아요. 팀이 100경기 넘게 치른 지금 시점에는 지칠 수 밖에 없죠. 시즌 초반에는 이들이 무리해서라도 포기하지 않는 경기를 펼쳤고, 지고 있던 경기를 하나 둘 역전하면서 팀에 응집력이 생겼죠. 승리에 대한 의지도 강해졌구요. 그 힘으로 한화가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는 무리했던 필승조가 무너지며 팀의 균형이 깨지는 흐름으로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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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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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한화의 돌풍을 이끌어온 필승조 권혁(32), 박정진(39), 윤규진(31)에 대해 송진우 해설위원(KBS N)이 17일 <한겨레>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송 해설위원의 지적대로 이들 투수들은 8월 들어 역력히 지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필승조의 핵심인 권혁은 8월에 9⅓이닝을 던져 7실점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이 6.75에 달한다. 시즌 내내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권혁은 리그 불펜투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총 이닝수가 92⅔이닝으로 10구단 전체 투수들 가운데서도 25위를 기록했다. 올해 서른 아홉살인 박정진이 90이닝을 던지며 불펜 중에 2위, 전체 29위에 올랐다. 둘다 웬만한 선발투수보다 많은 이닝을 던진 셈이다. 문제는 이들이 갈수록 많은 점수를 내준다는 점이다. 권혁의 월간 평균자책점이 4월에 2.78(22⅔이닝), 5월에 3.86(21이닝), 6월에 3.72(19⅓이닝), 7월 6.27(18⅔이닝)로 매달 올라갔다. 최근 한화가 4연패를 하는 동안에도 권혁은 세 번 등판해 모두 실점했고, 2패를 추가했다. 지난 16일 삼성과의 경기에선 8회 로저스에 이어 등판해 볼넷 2개, 2피안타로 시즌 최다패인 10패째를 기록했다. 박정진도 마찬가지다. 월간 평균자책점이 4월에 2.70(16⅔이닝), 5월에 2.59(24⅓이닝), 6월에 2.89(18⅔이닝), 7월에 3.12(17⅓이닝), 8월에 3.97(11⅓이닝)이다. 세 투수 가운데 가장 젊은 윤규진은 부상으로 한달 반의 공백이 있었는데도 50⅔이닝을 소화했다. 시즌 평균자책점이 2.66으로 양호한 편이지만, 8월에만 4.91에 달한다. 올시즌 내내 혹사 논란에 휩싸였던 한화의 필승조 세 투수의 8월 평균자책점이 17일까지 5.14에 달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혹사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한화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송진우 해설위원은 선수들의 투구에서도 피로도가 드러난다고 전한다. 그는 “권혁이 최근에는 슬라이더를 거의 던지지 않고, 직구 위주로 승부한다. 구속은 이전과 크게 차이가 없지만, 타자의 바깥쪽으로 꽉 차게 던지던 제구가 흔들리며 볼이 많아지고 있다. 볼 카운트가 불리하다보니, 공이 가운데로 몰리면서 연타를 맞는다. 체력이 떨어졌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박정진은 옆으로 꺾이는 구질인 슬라이더를 아래로도 떨어뜨리며 결정구로 쓰는데,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던진 공이 너무 낮아 땅에 맞고 튀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한화가 올시즌 거둔 성과는 이 세 선수를 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실제 한화는 팀 기록이 대부분 하위권이다. 팀 타율이 2할7푼으로 7위, 팀 홈런 수가 84개로 최하위, 팀 평균자책점이 4.95로 8위다. 김성근 감독이 ‘지옥의 펑고’를 치며 선수들을 단련시켰지만, 여전히 실책 수가 87개로 롯데와 케이티에 이어 전체 3위로 수비가 허술하다. 도루저지율은 9위이고, 팀 도루 수는 69개로 전체 8위다.
강력한 필승조만이 다른 팀보다 비교우위에 있었다. 그래서 한화의 필승조는 상황을 가리지 않고 등판했다. 김성근 감독은 선발투수가 3점 이하로 내줬는데도 6회 이전에 교체하는 ‘퀵후크’를 리그 최다인 54번이나 단행하며 승리에 강한 집착을 보였고, 그때마다 등판한 필승조의 역투는 리그 최다의 역전승(31회)을 일궈냈다.
결국 필승조가 제 모습을 찾아야 한화가 포스트시즌 티켓이 걸린 5위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해법은 투수진 운영에 달려있다. 치열한 순위 싸움 와중에 지켜야 하는 경기에서 필승조를 아끼긴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상황에서 선발투수와 필승조 이외의 불펜진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송진우 해설위원은 “신인 김민우가 노히트를 기록하고 있어도 5회에 강판됐고, 다른 선발투수들도 경기 초중반에 조금만 흔들려도 바로 교체됐다. 때론 잘 던지던 선발투수가 4,5회에 상대 타자가 아닌, 감독을 상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판되지 않으려고 감독 눈치를 보면, 결국 조급하게 승부를 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한화가 선발투수들을 키워내려면, 직접 위기를 넘기는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필승조 이외의 불펜투수들 중에는 10경기 이상 못 나오는 경우도 꽤 있다. 투수진을 운용하다보면 쉽지 않지만, 이들 투수들에게 기회를 더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그래픽/표
권혁의 월간 평균자책점
4월 2.78(22⅔이닝)
5월 3.86(21이닝)
6월 3.72(19⅓이닝)
7월 6.27(18⅔이닝)
8월 6.75(9⅓이닝)
그래픽/표
불펜투수 투구이닝
1위 권혁(한화) 92⅔이닝
2위 박정진(한화) 90이닝
3위 최금강(NC) 75⅓이닝
4위 김영민(넥센) 69이닝
4위 조상우(넥센) 69이닝
4위 홍성민(롯데) 69이닝
7위 장시환(KT) 64⅓이닝
8위 안지만(삼성) 56⅔이닝
9위 전유수(SK) 54이닝
10위 이성민(롯데) 53⅔이닝
*8월16일 기준, 선발과 중간을 오가지 않은 순수 불펜투수들만 선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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