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중 기자의 풀카운트
“박병호 외에 손아섭도 영입후보다.”
복수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입에서 롯데의 손아섭이 오르내리고 있다. 조용히 손아섭을 관찰하는 스카우트들과는 달리 국내 누리꾼들의 반응은 뜨겁다. 이미 여러 야구 커뮤니티들과 기사 댓글을 통해 손아섭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성공 가능성을 평가하고 있다. 여론을 살펴보면 종종 “도전해 볼 만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메이저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근거는 “강정호, 박병호에 비해 장타력이 크게 뒤떨어진다”, “두산의 김현수나 샌프란시스코에서 활약하는 일본인 타자 아오키 정도의 컨택 능력(타격의 정확도)을 갖추지 못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투수들의 공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다” 등이다. 물론 손아섭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직접 뛰어보기 전에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손아섭이 받는 평가가 지나치게 박한 측면이 있다. 야구 현장을 취재하면서 접한 여러 전문가들도 저평가된 대표적인 선수로 손아섭을 꼽는다. 그런 측면에서 손아섭의 숨겨진 기록 5가지를 꼽아봤다.
손아섭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통산타율을 공인하는 기준인 3000타석 이상을 소화한 타자들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타율을 기록 중이다. 1위는 1992년 롯데에서 은퇴한 장효조로 3632타석을 소화해 3할3푼1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손아섭이 29일 기준으로 3410타석을 소화해 3할2푼4리로 2위이고, 이어서 김태균(0.321), 김현수(0.318), 양준혁(0.316), 데이비스(0.313), 이병규(0.311), 이대호(0.309), 김동주(0.309), 이승엽(0.305) 등이 뒤를 잇는다. 전현직 내로라하는 타자들보다 손아섭의 타율이 높은 셈이다.
통산 타율에서 보듯이 타격의 정확도 부문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두산의 김현수와 비교해도 성적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김현수는 2008년 시즌에 3할5푼7리의 무시무시한 타율을 기록하며 1988년생 동갑내기인 손아섭보다 먼저 스타로 등극했다. 김현수는 타자에게 불리한 잠실구장을 사용하면서도 거의 매년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해 ‘타격천재’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5년의 기록만을 두고 두 선수를 비교하면 타격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타율, 안타, 출루율 등이 모두 손아섭이 크게 앞선다. 손아섭과 김현수의 지난 5년 기록에서 평균을 산출하면 각각 타율은 3할3푼4리과 3할8리, 안타는 151개와 137개, 출루율은 4할1푼과 3할9푼이다. 심지어 평균 장타율도 손아섭이 4할8푼7리로 김현수의 4할5푼9리보다 높다.
세 번째 숨은 기록은 ‘보살’이다. 보살은 야수가 공을 잡아 주자를 누상에서 아웃시키는 숫자를 가리키는 기록으로 주로 어깨가 강한 외야수들이 수위권에 오른다. 손아섭은 2011년부터 4년 연속으로 외야수 중에 보살이 1위다. 그만큼 어깨가 강하고,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높다는 방증이다. 지난 27일에도 우익수로 출전한 손아섭은 박동원의 안타성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낸 뒤 한바퀴 구르고서 바로 일어나 2루로 빠르게 송구해 주자 김하성을 잡아냈다. 올해는 부상으로 한달 이상을 경기에 결장해 외야수 보살 분야에서 나성범, 브라운, 김호령 등에 뒤지고 있다.
네 번째 숨은 기록은 도루다. 손아섭은 2013년 도루 36개를 기록하며 그 해에 엔씨의 김종호에 이어 시즌 2위에 올랐다. 최근엔 부상과 몸상태를 고려해 도루를 자제하는 편이지만, 웬만한 땅볼에도 1루로 살아나가는 그의 빠른 발은 여전하다.
손아섭은 단점으로 지적받는 타점과 장타력도 매년 나아지고 있다. 손아섭은 2012년부터 매년 홈런, 타점, 장타율이 상승했다. 지난해엔 18홈런에 80타점, 장타율 5할3푼8리를 기록했다. 올해엔 잔부상이 겹치며 4월까지 타율 2할3푼대로 부진했고, 6월엔 손목 부상으로 한달 이상을 결장했다. 하지만 어느새 3할2푼대 타율에 세자릿수 안타,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 중이다.
선구안도 진화 중이다. 손아섭은 한때 나쁜 공에도 방망이가 잘 나가는 ‘배드볼 히터’로 불렸지만, 이제는 리그에서 가장 공을 오래 보는 타자가 됐다. 2013년 타석당 투구수가 3.72개였고, 올 시즌엔 4.21개다. 볼넷 숫자도 매년 늘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손아섭은 지난 5년간 가장 많은 안타를 친 타자이자, 출루율이 김태균, 박병호, 박석민 다음으로 높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출루율 10위권인 강정호보다도 지난 5년간 평균 출루율이 높았다. 항간의 오해와는 달리 피가로, 클로이드, 벤헤켄, 소사, 스틴슨 등 외국인 투수들을 상대로도 4할이 넘는 강한 타자다.
무엇보다 손아섭의 강점은 남다른 허슬플레이다. 롯데의 포수 강민호는 2013년 마지막 경기를 보고서 손아섭의 투혼에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강민호는 “순위가 결정된 마지막 경기임에도 아섭이가 땅볼을 치고 1루로 슬라이딩을 하더라. 그것이 나에게 부족한 ‘절실함’이란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수비에서도 전력질주하고 자주 몸을 날리는 탓에 호수비가 많지만, 거꾸로 실책도 올해 8개로 조금 있는 편이다. 송재우 해설위원(MBC스포츠플러스)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흥미로워 할 정도로 남다른 허슬플레이를 하는 선수다. 올해 하필 부상이 있었지만, 의외로 손아섭 같은 선수가 메이저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철저히 기록으로 선수를 평가한다. 스카우트들이 김현수, 최형우 등에 비해 다소 이름값이 떨어지는 손아섭에 주목하는 이유다. 하지만 손아섭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구단의 허락과 공개입찰(포스팅) 금액이다. 손아섭은 올해로 7시즌을 3분의 2이상을 소화해 구단의 허락 하에 해외 진출이 가능하다. 모기업의 분위기와 최근 여러해 부진을 면치 못한 팀의 사정상 필수전력인 손아섭을 놓아주기가 쉽지 않다. 만일 구단이 허락해도 포스팅 금액이 적당해야 한다. 2011년 일본 야쿠르트에서 250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으로 미국 밀워키로 옮긴 아오키가 손아섭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진출 전 별로 기대를 받지 못했던 아오키는 메이저리그에서 변함없는 안타능력을 뽐냈고, 3년 계약이 끝나자 몸값이 치솟았다. 지금은 강팀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동의 1번타자로 활약 중이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