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2.06 10:54
수정 : 2016.02.0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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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매리너스 공식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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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타자’ 켄 그리피 주니어(47)는 지난달 7일(한국시각) 수백 통의 축하전화를 받았다. 역대 최고 득표율(99.3%)로 미국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당시 부모님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 감사했다. 켄 그리피 주니어는 그들이 건강을 회복해 명예의 전당 입성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6년 7월, 켄 그리피 주니어가 경기를 마치고 클럽하우스(탈의실)로 돌아오자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76)가 다가와 말했다. “할 말이 있다. 아들아.” 어두운 표정을 짓던 아버지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너의 어머니가 지금 대장암을 앓고 있다.” 켄 그리피 주니어는 순간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급한 마음에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사실, 너의 아버지도 전립선암 후기”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은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더 이상 야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 개인 사정 따위는 전혀 고려치 않는다. 아들은 더욱 이를 악물었다. 부모님을 머릿속에 그리면서도 경기 중엔 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가 정성껏 간호했다. 아들의 정성과 성실한 병원 치료로 결국 그의 부모는 암과의 싸움을 이겨냈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 부부는 아들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손꼽아 기다렸다.
켄 그리피 주니어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뒤 “아버지가 나보다 더 좋아하셨다. 부모님이 살아계시지 않았다면 명예의 전당은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명예의 전당 입성은 아버지가 나보다 더 원하던 일”이라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금 내 옆에 있고 그들이 건강하다는 것, 이것이 나의 모든 것이다. 결국 나는 꿈을 이뤘다”고 소감을 밝혔다. 켄 그리피 주니어는 전립선암이 유전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현재 아버지와 함께 전립선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활동을 해나가며 정기검진을 꾸준히 받고 있다.
켄 그리피 부자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우선 아들의 기록부터 살펴보자. 아들은 1987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시애틀에 입단해 2010년 시애틀에서 선수 생활을 마칠 때까지 2671경기에 출전, 통산 타율 0.284, 2781안타, 630홈런, 1836타점을 기록했다. 1997년 최우수선수(MVP) 이후 10차례 골드글러브(1990~1999)와 7차례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76) 역시 빅리그에서 통산 2143안타를 때린 당대 손꼽히는 스타플레이어였다. 부자가 동시에 시애틀에서 뛰던 1990년 9월15일에는 초유의 부자 ‘백투백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애틀은 켄 그리피 주니어의 업적을 높이 사 그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결정된 이튿날인 1월9일 “켄 그리피 주니어의 24번을 영구결번 처리한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동시에 시애틀의 홈구장인 세이프코필드에서 영구결번식을 가졌다. 켄 그리피 주니어 또한 이 자리에 참석했다. 시애틀은 더불어 4월9일 홈 개막전에 켄 그리피 주니어를 시구자로 초청한다고 밝혔다. 시애틀과 최근 마이너리그 계약을 한 이대호가 스프링캠프 경쟁을 뚫고 개막 25인 엔트리에 들 경우 켄 그리피 주니어의 시구와 함께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게 된다.
권승록 기자ro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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