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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독의 미소. 11일 도쿄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 2005‘ 삼성 라이온즈와 중국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삼성이 8-3으로 승리한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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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만난 ‘승부사’ 선동열, 팀내 3선발 내세워 ‘일부러’ 패배?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머린스의 경기를 보면서 야구 팬들은 한가지 의문이 생겼을 것이다. 이날 경기는 선발투수 대결에서 완패했다. 삼성의 투수는 마틴 바르가스. 팀내 제3선발로 시즌 10승(8패)에 턱걸이했고 평균 자책은 5점(5.06)을 넘는 평범한 투수다. 반면 롯데의 선발투수는 팀내 제2선발 고바야시 히로유키였다. 시즌 12승6패에 평균 자책 3.30을 기록한 고바야시는 와타나베 순스케와 함께 롯데의 ‘원투펀치’로 불린다. 한신 타이거스와의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는 6이닝 3안타 1실점의 빼어난 투구를 선보이기도 했다. 한-일간의 실력 차이는 제쳐두고라도 드러난 성적만으로도 둘의 무게는 차이가 현격하다. 팀내3선발, 초반 제구력 고질병 바르가스 내세워 ‘패배 자초’? 그런데 선동열 삼성 감독은 왜 바르가스를 선발로 내세웠을까? 정석대로라면 일본의 롯데처럼 제1선발이 결승전, 제2선발이 한국-일본전, 제3선발이 대만전, 제4선발이 중국 전에 나가야 한다. 바르가스가 일본 야구 경험(2002~2004년 주니치 드레곤즈)이 있다고 하지만 용병술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치 않다. 이날 삼성은 안타 수에서 10-8로 롯데를 앞섰고, 바르가스 이후에 나온 투수들은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선보였다. 더욱이 바르가스는 초반 제구력에 문제가 있다. 이날 경기에서도 바르가스는 ‘고질병’이 도지며 1회에만 3실점했다. 바르가스가 초반 실점만 하지 않았다면, 만약 선발이 바르가스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한 경기였다. 그런데 선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아쉬움을 나타내기는커녕 줄곧 여유가 넘쳤다. 그는 “바르가스는 무조건 5회까지 던지게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바르가스는 어차피 ‘버리는 카드’였던 셈이다. 선 감독은 이어 “중간에 나온 투수들이 잘 던져줬다”고 만족해했다. “낮은 공에 속지 말라”는 주문에도 불구하고 타자들이 고바야시에게 5회까지 눌린 것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선 감독은 “타자들이 낮은 변화구 대처에 미흡했다”고만 짧게 말했다. 삼성 4번 타자 김한수도 “속지 않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상대의 느낌은 달랐다. 고바야시는 되레 “삼성 타자들이 낮은 변화구에 속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삼성 타자들은 고바야시의 낙차 큰 포크볼을 의식하고 타석에 들어섰고, 3회까지는 이 공에 방망이가 나갔지만, 타순이 한바퀴 돌고 나서부터는 제법 적응한 느낌이었다. 삼성은 6회에는 안타를 4개나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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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11일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 중국 올스타와의 2차전에서 8-3으로 승리한 뒤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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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만 이기면 어차피 일본과 다시 결승서 만나” 투수와 타자 모두 어느 정도 성과를 일궈낸 셈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투수대결에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6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안지만-강영식(7회)-권오준(7회)-오승환(8회)-임동규(8회)는 매회 삼진을 솎아내며 3안타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또 타선도 일본 투수들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삼성은 고바야시가 물러난 뒤 팀내 제5선발 오노 신고(7회)-좌완 홀더 후지타 소이치(7회)-우완 홀더 야부타 야스히코(8회)를 상대로 7회와 8회 2안타씩을 뽑아냈다. 다만 ‘세이브왕’ 고바야시 마사히데(9회)에게만 삼자 범퇴를 당했다. 결승전 예상 선발은 삼성의 배영수와 롯데의 ‘잠수함 투수’ 와타나베 순스케다. 와타나베는 시즌 15승4패, 평균자책 2.17의 빼어난 실력을 뽐냈지만 한국 타자에게 익숙한 정통 언드핸드 스로 투수로, 기교파인 고바야시보다 되레 덜 까다로울 것으로 보인다. 선동열 감독은 대만만 이기면 어차피 일본과 다시 결승에 만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팀내 제2선발이자,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인 팀 하리칼라를 일본전이 아닌, 12일 대만전 선발로 내세워 ‘이변’을 철저히 봉쇄할 예정이다. 결승전 선발인 배영수는 현재 매우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 감독은 11일 오전 한국 기자들과 만나 “배영수는 현재 한국시리즈 때만큼 공을 던지고 있다”면서 “본인도 어제 불펜투구를 마친 뒤 ‘너무 좋아서 탈’이라고 했다”며 밝게 웃었다. “안 바쁘다. 감독이 경기 전에 할 일이 뭐 있냐” 취재진에게도 인기 선동열 감독은 기자들에게도 영양가 만점의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선 감독은 삼성 경기가 있는 날에는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한국기자들만 따로 만나고 있다. 이번 대회는 경기 전에 취재가 허용되지 않는다. 홈플레이 뒤에 울타리를 쳐놓고 사진만 찍도록 했다. 과거부터 친분이 있는 선수와 기자가 몇 마디 얘기를 나누는 정도다. 그래서 선 감독은 한국 기자들과의 ‘만남’을 마련한 것이다. 영양가도 만점이다. 선 감독은 지난 9일 공동기자회견에서 “타자들에게 낮은 공에 속지 말라고 주문했다, 실투를 줄이면 승산이 있다, 이승엽도 그저 일본(롯데) 선수라고 생각한다”는 등의 관심사를 쏟아냈다. 10일 한국 기자들과의 브리핑에서도 그는 “승엽이랑 오늘 내 방에서 2시간 가량 얘기했다. 승엽이는 (롯데에) 남을 것 같더라, 승엽이에게 ‘우리 투수들 공 못 칠것’이라고 기를 팍팍 죽여놨다”는 등 흥미로운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브리핑 자리 마련해 줘 고맙다”고 인사하는 기자들에게 “안 바쁘다. 감독이 경기 전에 할 일이 뭐 있겠냐. 좀 더 얘기해도 괜찮다”고 말해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그는 특히 선수단 도착 첫날인 8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4개국 감독 기자회견장에서 주최쪽이 일본어로만 통역해 한국 기자들이 철저히 배제된 것을 의식한 듯, 그 다음 공동 기자회견 때는 일본인 통역에게 ‘한국어로도 통역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또 일본 도착 첫날, 이승엽과의 만남을 취재하려는 사진기자들이 저녁식사도 거른 채 리셉션장 앞에서 ‘뻗치기’에 들어가자, 이승엽을 급히 불러 ‘선동열-이승엽 상봉’ 사진을 찍게 했다. 10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이승엽의 네번째 타석 때 오승환을 ‘원포인트 릴리프’로 마운드에 올려 ‘이승엽-오승환 대결’을 만든 것도 한국 팬들을 생각하는 ‘서비스’였다. ‘승부사’ 선 감독의 ‘도쿄 구상’과 ‘도쿄 행보’에 기자들과 독자들은 한껏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도쿄/<한겨레> 스포츠부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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