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24 18:48
수정 : 2006.04.2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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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대신 콜라 세례 스물 둘의 패기 넘치는 임성아에겐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도 한명의 경쟁자일 뿐이었다. 임성아(오른쪽)가 장정의 축하세례를 받고 있다. 스톡브릿지/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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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스탐에 막판 뒤집기로 LPGA 생애 첫우승
태극낭자 올해 7개 대회서 3승…역대 55승째
국내 골프인들조차 신예 임성아(22·농협한삼인)의 우승 가능성에 “글쎄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상대가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36·스웨덴)이기에 더욱 그랬다. 특히 좀처럼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소렌스탐이 최종라운드를 앞두고 1타나 앞서 있었다. 심리적으로 흔들림이 없는 소렌스탐과 챔피언조에 묶인 것도 부담이었다. 그러나 정작 필드에 나설 임성아는 ‘왜들 그러느냐’고 꾸짖 듯 호기를 부렸다. “소렌스탐은 훌륭한 선수이지만 두렵지 않다.”
그런 배짱 때문이었을까? 천하의 소렌스탐이 14살이나 어린 임성아 앞에서 무너졌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년차인 임성아로서는 생애 첫 우승. ‘역전불허’ 소렌스탐과의 정면대결에서 오히려 역전우승을 이룬 것이기에 더욱 감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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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지 않았기에 소렌스탐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 우승을 확정지은 임성아가 소렌스탐과 껴안고 있다. 스톡브릿지/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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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한국시각) 미국 조지아주 스톡브릿지의 이글스랜딩컨트리클럽(파72·6401야드)에서 열린 ‘플로리다스 내추럴 채러티 챔피언십’ 마지막 날 4라운드. 임성아는 버디 3개와 보기 3개로 이븐파 72타를 쳐 다소 부진했다. 하지만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새로운 골프여왕으로 등극했다. 우승상금 21만달러(2억원).
임성아는 16번홀까지 소렌스탐과 공동선두를 달리다 17번홀에서 소렌스탐이 더블보기의 실수를 범해 단독선두가 된 뒤, 18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내 대어를 낚았다. 이날 공동 2위를 기록한 소렌스탐, 크리스티 커(미국), 카리 웹(호주)이 그동안 이뤄낸 우승 승수는 무려 104승. 그들을 뒤로 밀어내고 임성아가 우승을 차지하자, 장정 한희원 등 선배들이 그린으로 뛰어나와 머리에 콜라를 부으며 축하했다. 임성아의 우승으로 한국은 엘피지에이 투어 우승 횟수를 총 55회로 늘렸고, 올해 7개 대회에서 벌써 3승(김주미 이미나)이나 주어담았다.
지난해말 미국으로 다시 출국하면서 “부모님께 꼭 우승컵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던 임성아는 자신과의 약속도 지켰다. 당뇨로 수년째 고생하는 어머니와 환갑을 넘기고도 자신을 미국에서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아버지께 꼭 보답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대한항공 기장 출신인 임성아의 부친도 “딸이 우승할 때까지 몇십년간 피던 담배에 손을 대지 않겠다”며 딸의 곁을 지켰다.
특유의 성실함도 임성아의 이번 우승의 원인이었다. 국내에서 그를 가르친 우천명 박사는 “뭔가 지시하면 밤이 깊어도 끝까지 훈련량을 채우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또 “중고시절 ‘홀까지 몇 미터 남았을 때 어떤 클럽으로 어떻게 공략할지’ 등을 머리속으로 그려보는 심리 트레이닝을 꾸준히 해온 것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평소 좋아하던 박세리 언니처럼 트로피에 입을 맞춘 임성아는 “사실 소렌스탐과 경기를 하게 돼 손이 떨렸고, 내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였다”며 “소렌스탐이 17번홀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언제든 이글을 잡을 수 있는 선수라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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