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6.12 19:39 수정 : 2006.06.12 19:39

컷오프3회·기권4회로 추락 ‘주말골퍼’ 비아냥까지…
골프채 내려놓고 휴식 “왜 골프치나” 끝없는 자문
“이젠 즐겁고 신나게 골프”

[뉴스인물] 2년여만에 LPGA우승 박세리

“내가 세리의 골프공이 되어서 세리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다니고 싶어요.”

박세리(29·씨제이)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한없는 부진에 헤매고 있을 때 어머니 김정숙(49)씨가 한 말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체는 길고도 깊었다. 2004년 5월 미켈롭울트라오픈이 마지막 우승이었다. 2004년 시즌을 맞으며 “더이상 아니카 소렌스탐 뒤를 쫓는 2인자가 되지 않겠다”던 박세리는 느닷없이 샷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5년에도 고작 12개 대회에 나가 10위 진입은커녕 컷오프 3회, 기권 4회로 추락을 거듭했다. 2위였던 상금순위도 102위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5월 숍라이트클래식에서는 14오버파 85타를 쳤다. ‘주말골퍼’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중학교 이후 단 한번도 내지 않은 최악의 스코어였다. 그해 7월 에비앙마스터스에는 출전자격(상금순위 60위 이내)도 얻지 못했다.

엘피지에이 데뷔 첫해인 1998년, 박세리는 국민적인 영웅이었다. 당시 유에스(US) 여자오픈 연장 18번홀에서 양말을 벗고 연못 속으로 들어가 샷을 하던 그의 모습은 외환위기로 어깨가 처져 있던 국민들의 시름을 잊게 했다. 양말을 벗자 선명히 드러난 검게 탄 종아리와 흰 발목의 대비는 ‘노력하면 된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그러나 메이저대회 4승을 포함해 22승을 챙겼던 박세리가 부진하자 모두들 손가락질했다.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부터 온갖 소문이 박세리를 짓눌렀다.

12일(한국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해버디그레이스의 블록골프장. 오스트레일리아의 카리 웹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시즌 두번째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 엘피지에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박세리는 그린 위를 펄쩍펄쩍 뛰었다. 후배 크리스티나 김이 엘피지에이를 개척한 ‘1세대 언니’의 머리에 샴페인을 마구 뿌렸다. 박세리는 “골프코스에서 이렇게 뛴 것은 처음”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관련기사 19면

무관에 그친 2년1개월의 긴 시간을 통해 부쩍 성장한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많은 듯했다. “처음 미국에 와 영어도 못하는 외로움을 딛고 매주 경기만 생각하며 달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왜 골프코스를 걸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골프에 싫증이 났다. 그랬더니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지난해 8월) 오른 손가락을 다쳐 쉬면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봤다. 골프채를 놓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충전의 시간을 가졌고 왜 골프를 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푹 쉬고 나니 신이 났고, 골프장에 나와서도 즐거웠다.”

박세리는 지난해 가을 엘피지에이에 병가를 내고 골프채까지 미국에 놔둔 채 귀국했다. 골프를 잠시 잊고 킥복싱과 태권도에도 재미를 붙였다. 그렇게 골프의 삶에 처음으로 ‘쉼표’를 찍고 난 박세리는 올해 초 미국 올랜도에서 겨울훈련에 다시 임했다. 박세리와 함께 미국에 있던 막내 동생이 “언니가 밤새 끙끙 앓을 정도로 독기를 품고 운동해요”라고 집에 전화를 걸 정도였다. 또 지난해부터 심리학자들에게 조언을 받았고, 강하고 부드러운 스윙으로 폼을 바꿨다.

박세리 못지 않게 우승이 반가운 사람은 그동안 그림자처럼 딸을 돌보던 아버지 박준철(51)씨다. “어렸을 때부터 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골프채를 옆에 두게 했고, 쉬어도 골프장에서 놀게 했다. 얼마 전 세리의 동생까지 귀국시킨 뒤 혼자 편하게 쳐보라고 말해줬다.” 박씨의 기분은 “국민들의 응원 덕분에 그동안 포기하지 않았다”던 딸의 기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