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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교통사고로 모친 잃은 신지애
올시즌 상금왕…‘행복 전파’ 선행왕
“그날 비가 왔어요. 오후 6시인가 7시인가.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데 아빠 휴대폰으로 전화 한통이 왔어요.”
엄마의 사고 소식이었다. 이모 회갑연에 참석하려고 전남 영광에서 목포로 가던 엄마의 차를 25톤 트럭이 괴물처럼 덮쳤다. 엄마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여동생과 남동생은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지만, 어깨 다리 목뼈 등이 부러졌다. 시골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아빠의 월급은 85만원. 집이 없어졌고, 병실이 곧 집이 됐다.
중학교 3학년이던 그는 병실 간이침대에서 생활하며 1년여간 동생들을 돌봤다. 병원을 나온 가족이 몸을 누인 곳은 15만원짜리 월셋방이었다. 주저앉고 싶었을텐데 그는 그때 이상한 힘이 생겼다고 했다. “골프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에서 도움도 많이 줬거든요. 어려움을 겪으니까 마음이 더 강해지더라고요.”
1m55의 18살 여자프로골퍼 신지애(함평골프고 3년). 그는 하늘에 있는 엄마를 떠올리며 씩씩하게 뛰는 만화 ‘달려라 하니’의 여주인공 같다. 엄마에게 우승선물을 전하기 위해 장애물을 헤쳐나간 그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데뷔 1년 만에 박세리(29·CJ)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달성했다.
지난 19일 중국 샤먼에서 열린 오리엔트 차이나 레이디스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올해 우승 3회, 준우승 5회로 상금만 3억6446만원을 챙겼다. 한국 남녀프로골퍼를 통틀어 시즌 상금 3억원 돌파는 처음이다. 그는 신인왕, 대상도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얼마전 그의 식구들은 경기도 용인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버지 신재섭(47)씨는 “지애 덕분에 부모님도 다시 모시고 함께 살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신지애는 연습을 많이 한 힘이라고 했다. “골프만 생각했고, 매일 10시간 이상씩 연습했어요. 파3홀 연습장에서 쇼트게임 훈련을 많이 하면서 아이언샷이 부쩍 좋아진 게 힘이 된 것 같아요.” 그는 작은 키에도 드라이버샷으로 250~260야드를 날리는 장타자다. “제가 체력 하나는 좋거든요.”
키가 작아 고민이 없었냐고 물었더니, “우리반에서 제가 제일 작아요. 지금 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거든요. 근데 불편한건 없어요. 작은 키로 공을 멀리 보낸다고 놀라는 분들이 더 많잖아요”라며 깔깔 웃었다.
가수 이승기와 거미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신지애는 아빠한테 용돈을 타 쓰는 알뜰한 여고생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아낌없이 돈을 쓸 때가 있다. 신지애는 상금을 타면 돈을 떼 독거노인과 복지관 등에 쌀 100가마를 기증했고, 소년소녀가장 장학금과 수재의연금 등으로 2300만원을 전달했다. 연말에도 1000만원을 불우이웃에게 기탁할 예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꼬마천사’라 부른다.
“내가 도움을 받고 커 왔잖아요. 내가 도움을 주면, 그 누군가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거라 생각해요.” 돈이 없을 때 골프연습장 등을 무료로 개방해준 지인들의 배려로 엄마를 잃은 슬픔을 이겨낸 신지애. 이렇게 사랑은 희망을 낳고, 희망은 또다른 사랑을 만들어낸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KLPG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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