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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16 10:38 수정 : 2007.07.16 10:38

"이제 다 이뤘다. 마음이 편하다"

지난 달 11일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이 끝난 뒤 박세리(30.CJ)는 친구와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세리는 LPGA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치고 그토록 고대했던 명예의 전당 입회를 확정지었다. 2004년 미켈롭 울트라오픈 우승으로 포인트는 다 채웠지만 '현역으로 10년간 활동' 조건을 채우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런데 바로 그 2년 동안은 박세리에게 치료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준 힘겨운 나날이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쳤다하면 오버파였고 80대 타수도 수두룩했다. 주변에서는 '박세리는 끝났다'고 수군댔다.

가장 심했던 2005년 박세리는 상금랭킹이 102위까지 떨어졌고 시즌 평균 타수는 74.21타까지 치솟았다.

박세리가 출전한 대회를 취재하던 기자들 사이에 '오늘도 난초를 그렸다'는 말이 자주 오갔다. 드라이브샷이 페어웨이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날아다니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었다.

그토록 견고하던 박세리의 스윙이 망가진 원인에 대한 진단은 분분했지만 대체로 결론은 한가지였다. 바로 '마음의 병'이었다.


슬럼프에 허덕일 때 한희원(29.휠라코리아)은 "연습 때 보면 세리 언니 샷은 좋기만 하더라"고 말했다. 다른 선수들도 "연습장에서 본 세리 언니 샷은 정말 일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렇지만 실전에서는 박세리의 샷은 종잡을 수 없이 흩날렸다.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는 현상이었다.

이루는데 평생 걸릴 필생의 과업을 7년 만에 달성한 박세리에게 목표 의식이 사라졌고 초등학생 때 골프채를 손에 쥔 이후 오로지 골프에만 매달려온 단순한 삶의 방식에 피로감이 몰려 온 것이다.

주변에서도 '당분간 골프는 잊고 싫도록 놀아보라"고 했지만 박세리는 '영원한 스승'인 아버지 박준철(57)씨에게 "왜 내게 노는 법은 안 가르쳐줬냐"고 울부짖기도 했다고 한다.

박세리가 걸린 '마음의 병'은 부상으로 이어졌다. 러프와 벙커 등 험한 곳에서 자주 볼을 치다 보니 팔목을 다쳤다. 때문에 시즌을 접고 은둔 생활이나 다름없이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불굴의 박세리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씻고 다시 일어섰다. 지난해 6월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극적인 연장 우승으로 부활의 전주곡을 울렸지만 이후 우승컵을 더 이상 보태지 못했다. 우승 다툼을 벌이는 광경도 눈에 띄지 않았다.

'잠깐 반짝한 것 아니냐'거나 '투지가 없어졌다'는 눈총도 쏟아졌다. 하지만 박세리는 이미 재기를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전처럼 이를 악물고 훈련에만 매달리는 '골프에 다 걸기'는 사라진 게 사실이었다. 선배, 후배들과 만나 수다도 떨고 쉴 때는 골프를 잊었다.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는데 필요한 것은 죽기 살기로 하는 훈련이 아니라 '여유'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새벽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오로지 훈련만 하던 박세리는 지난 겨울 동안 오전 9시에 스트레칭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여유로운 훈련 일정을 짰다. 쉬엄 쉬엄 스윙 점검과 샷 연습을 한 뒤 2시간 가량 라운드, 그리고 저녁에 웨이트트레이닝 등의 순서였다.

효과는 천천히 나타났다. 나비스코챔피언십에서 3라운드 공동선두로 나선 끝에 공동 10위에 올라 시즌 첫 '톱 10'을 메이저대회에서 이뤄냈다. 전에는 성에 차지 않을 성적이고 선두였다가 우승 경쟁에서 밀려났으면 속이 상했을텐데 박세리는 여유만만이었다.

긴오픈에서 공동 6위, 그리고 미켈롭울트라오픈 공동 10위, 사이베이스클래식 3위 등 3개 대회 연속 '톱10'의 상승세는 US여자오픈 공동 4위로 이어졌다.

특히 언더파 스코어를 내기 힘든 US여자오픈에서 3, 4라운드 연속 데일리베스트인 3언더파 68타를 때려냈다.

쭉쭉 뻗어가는 강력한 드라이브샷과 자로 잰 듯한 아이언샷, 그리고 승부처에서 어김없이 홀에 빨려들어가는 퍼팅 등 전성기의 기량이 다시 살아난 것은 2년 동안 겪었던 아픔만큼 성숙해진 덕이었다.

박세리는 우승 인터뷰에서 "이제 다시 시작"이라면서 "늦은 감은 있지만 올해의 선수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에 대한 믿음을 되찾았다는 뜻이다.

심리적 안정이 무너지면서 망가졌지만 이제는 '외유내강'으로 거듭난 박세리가 다시 한번 온 국민의 응원을 받으면서 세계 정상 정복을 향해 줄달음칠 지 기대가 된다.

권 훈 기자 khoo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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