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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18 06:53 수정 : 2009.08.18 06:53

버디 놓친 우즈, 패배 예감한듯… 양용은(왼쪽)이 17일(한국시각) 피지에이(PGA) 챔피언십 4라운드 13번 홀에서 버디 퍼팅을 농친 뒤 아쉬워하는 타이거 우즈를 쳐다보며 이동하고 있다. 채스카/AFP 연합

연습 또 연습 독학으로 프로입문
2006년 우즈 제치며 ‘킬러’ 예고
5년간 투어 전대회 출전권 얻어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 골프 메이저대회를 정복한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을 사람들은 ‘바람의 아들’이라 부른다. 바람 많은 제주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거센 섬바람처럼 그에게는 시련도 많았다. 하지만 시련은 그를 더욱 옹골차게 만들었고, ‘호랑이’를 제압할 뚝심을 키웠다.

양용은은 19살 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골프장에서 공 줍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골프의 매력에 빠졌다. 당시만 해도 골프는 부자들만 하는 운동이었다. 귤농사를 지으며 3남5녀를 키우느라 허리가 휜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연습비 마련을 위해 나이트클럽 웨이터도 했다. 골프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깨 너머 배운 샷을 혼자서 연습하고, 불꺼진 골프장에 새벽까지 남아 비닐하우스용 파이프를 골프채 삼아 휘둘렀다. 어머니 고희순(66)씨는 “용은이는 골프를 하는 줄도 모르게 골프를 했다”고 회상한다.

어렵게 훈련하다보니 프로 입문도 늦어졌다. 24살이던 1996년에야 비로소 프로테스트를 통과했다. 명색이 프로 골퍼였지만, 그다지 돈벌이는 되지 않았다. 1997년 투어 대회에선 꼴찌(60위)도 했다. 궁핍한 생활에 레슨 프로를 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긴장이 풀어질까 무조건 연습에만 매달렸다.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2002 에스비에스(SBS) 최강전에서 우승하며 뒤늦게 국내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2004년부터는 일본 프로골프 투어에서 활약하며 3년 동안 4승을 거뒀다. 그리고, 2006년 11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유러피언 투어 개막전 에이치에스비시(HSBC) 챔피언스에서 6연승을 달리던 타이거 우즈를 2타 차이로 제치고 우승한 것. ‘호랑이 사냥꾼’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미국 무대 도전은 수월치 않았다. 그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내리 미국 프로골프투어(PGA) 퀄리파잉(Q)스쿨에 도전했다. 2005년과 2006년엔 탈락했고, 2007년엔 통과했지만 2008년 상금순위가 157위 밖으로 밀려나 다시 치러야 했다. 그는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피지에이(PGA) 챔피언십 우승으로 앞으로 5년 동안 4대 메이저대회를 비롯해 투어 전대회를 참가할 수 있는 출전권을 얻었다.

생애 첫 피지에이 투어 우승의 기쁨을 안겨준 혼다클래식(3월) 상금(100만8000달러)과 피지에이 챔피언십 우승상금(135만달러) 등을 더해 그가 올해 벌어들인 상금액은 322만941달러(40억여원·투어 9위)가 됐다. 그는 타이거 우즈가 4라운드 때마다 입는 ‘빨간 옷의 공포’를 극복하면서 역전극을 펼쳐내 전세계 골프팬들에게 ‘호랑이 사냥꾼’으로 각인되는, 상금보다 값진 명예도 얻었다. 양용은은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아직도 우승 실감이 나지 않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피지에이 투어 플레이오프에 집중해 더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말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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