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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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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전지훈련 뒤풀이서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솔직한 평가’ 화제
한국축구의 영웅 이회택(60)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1960~70년대 한국축구를 풍미했던 선수였지만 그도 가슴 속엔 아쉬움이 있다. 16일(한국시각)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중국음식점 동천홍에서 축구대표팀 전지훈련 취재기자들과 만난 이 부회장은 저녁 반주가 거나해지자 축구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부회장은 요즘 젊은 선수들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솔직히 옛날에 박지성이보다 잘하는 선수 많았어. 근데 왜 박지성이만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뛴다고 생각해. 뭔가 비결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바로 근성이야.” “박지성 그 촌놈이 지금은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최고가 됐어. 만약 박지성을 능가할 선수가 나온다면 한국축구는 그 만큼 발전하는 거야.” 이동국 두고 “궤도 오르기가 쉽지 않아. 2002년 탈락하니까 4년을 기다려야잖아” 솔직한 박주영 평가 “대단해. 원래 달랐어. 하지만 진짜 천재라면 지금쯤…”이 부회장은 현재 아드보카트호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펼치고 있는 이동국(포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선수가 한번 궤도에 오르기가 쉽지가 않아. 2002년 월드컵 때 탈락하니까 4년을 기다려야 하잖아. 이번에는 꼭 가겠다고 벼르는 그 자세가 무서워.” “동국이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 옛날 한-일 청소년축구에서 터닝 중거리슛 하는 것. 그거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야. 동국이 허방이 절대 아니야.” “동국이가 근성만 있었다면 정말 대단한 스트라이커가 됐을텐데….” 이 회장은 대표팀 원톱으로 자리를 굳힌 이동국과 비교해 박주영(FC서울)에 대한 평가도 솔직하게 했다. 지난해 이 회장은 박주영이 한국대표팀의 원톱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박주영이의 지능, 발재간,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원래 달랐어.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뎌. 진짜 천재라면 대표팀 원톱을 이미 꿰찼어야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축구선수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뒤집기가 필요한데, 급피치를 올릴 시점을 잃어버리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다. “김남일 대표팀에 뽑혔을 때, 골 먹었을 때 말 많았지” “차범근도 데뷔땐 실수투성이…독일 차범근 집에 가면 김치가 안나왔어” “김남일이가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 때 주변에서 ‘왜 저런 선수를 뽑느냐’는 말이 많던지, 정말 속상했다. 2001년 8월 체코와의 원정평가전에서 실수를 해 골 먹었을 때도 난리가 아니었다.” “그 뒤로 완전히 달라졌어. 보통 감독들 같으면 그런 선수들 그라운드 근처에도 얼씬 못하게 한다. 그런데 허 참, 거스 히딩크 감독은 반대로 신뢰를 하고 키우대. 그러더니 선수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어. 뒤집어진 거지.” 뒤집기의 예는 또 있었다. “옛날에 차범근이 고3 때 처음 대표팀에 발탁돼 데뷔 경기에서 오른쪽 윙으로 뛰면서 실수도 많이 했어. 그런데 그 다음 경기가 메르데카컵이었는데 그 때 완전히 날았어. 대표팀 경기 처음 할 때는 몸이 굳고 떨리는데, 두번째 경기에서 궤도에 오른거지. 그 이후로 줄곧 오른쪽 윙 훈련을 하던 선배는 차범근에게 밀렸고, 10년간 그 자리는 차범근이 독차지 했어.” 차범근 이야기가 이어졌다. “차범근이 대단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오은미씨야. 그 당시 외국나가기가 쉬운 게 아니었어. 그런데 당시 실력자들을 찾아다니면서 해외에 나갈 수 있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녔지. 아마 오은미씨 없으면 차범근도 없었을 거야.” “분데스리가에서 차범근이 뛰던 시절 독일 차범근 집에 가 밥 먹으면 김치가 안 나왔어. 나중에 손님 돌아가려고 하면 오은미씨가 나와서 ‘미안하다. 남편 고기 먹어야 힘내 김치를 못 냈다’라며 사정 애기를 했지. 정말 대단해.” 이회택 부회장 “중앙정보부 ‘양지팀’으로 뽑혀 ‘국내 최강’에 안주…” 회한 이 부회장 자신의 아쉬움은 이 대목에서 시작된다. “우리 집 사람이 만약 나를 그렇게 붙잡아두면 내가 제대로 했을까? 아마 아닐거야.” 이 부회장이 축구 한 길에서 옆 길로 새기 시작한 것은 고3 시절. 할머니 밑에서 크고, 동북고 시절 자취를 하면서 오직 “첫째도 대표선수, 둘째도 대표선수, 셋째도 대표선수”만을 생각했다. 정말 한 길만 보고 달렸다. 옆 길로 샜다면 학교가는 길에 있었던 풀빵집과 단팥죽집 들르는 것이었다. 당시는 60년대. 분위기가 달랐다. “대표선수라면 술도 일등, 노름도 일등…. 그래야 했어.” 모든 부문에서 다 잘해야 한다는 게 당시 선배들의 주장이었다. 요즘 프로 선수들처럼 술·담배 안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몸 관리하고, 해외진출을 노리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중앙정보부의 ‘양지’팀으로 뽑혀가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당시 최강을 자랑하는 팀의 스트라이커였으니 모든 경기에서 이기고, 그것으로 만족하면서 국내용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수들 잘 한다, 잘 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천재라도 부족한 부분은 있어. 박주영도 마찬가지야. 그러면 지적을 해 주어야 하고, 지적을 받아야지. 그래야 클 수 있다고. 그렇지 않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알게 되면 그게 망하는 거야.” 이 부회장은 “그 당시 나를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라고 말한다. 만약 유럽으로 진출했다면 ‘아시아 특급’으로 충분히 이름을 떨칠 수 있었기에, 이 부회장의 아쉬움이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잠시 생각에 젖었다가, 말을 잇는다. “우리 때보다야 지금 선수들이 얼마나 뛰어난데. 우리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을 하고 있어. 독일에서도 다를 거야.” 로스앤젤레스/<한겨레> 스포츠부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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