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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바르셀로나 팬들이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확정된 뒤 거리로 나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바르셀로나/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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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투·벨레티 ‘월드컵 탈락 한풀이’ 바르셀로나의 챔피언 등극은 불운의 선수들이 일궈낸 값진 승리였다. 승리의 두 ‘일등공신’인 에투와 벨레티는 이번 독일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다. 에투는 경기 뒤 “카메룬이 월드컵에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내겐 더 중요하다. 그래서 기쁘지 않다”며 아쉬워 했다. 오른쪽 윙백인 벨레티는 카푸(AS로마)에 밀려 ‘삼바군단’ 최종 엔트리에서 끼지 못했다. 레블뢰(프랑스팀의 애칭) 유니폼을 입지못한 공격수 루도비크 지울리(프랑스) 역시 우승 직후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흘리며 우승 기쁨과 엔트리 탈락의 아쉬움을 한꺼번에 느껴야 했다.
■ 바르셀로나 ‘명가의 부활’ 레알 마드리드(29회 우승)와 프리메라리가를 양분하며(18회 우승) 명문클럽으로 성장한 FC바르셀로나는 명실상부한 시민구단으로 ‘다국적군’을 지향한다. 바르셀로나 최고의 영웅 중 한명은 네덜란드 출신의 요한 크루이프. 그는 선수로 리그 우승을 이끈 동시에, 1991~1992년 감독의 자리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바르셀로나가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던 2000년대 초반엔 브라질 ‘마법사’ 호나우디뉴가 나타나 팀의 리그 2연패를 이끌었다. 네덜란드 출신인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부터 데쿠(포르투갈), 카를레스 푸욜(스페인),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까지 진정한 ‘지구방위대’로 손색이 없다. ■ ‘클럽, 그 이상이 되자’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당시 수도 마드리드를 장악한 군부세력에 철저히 탄압을 당했다. 1899년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자금으로 창단한 FC바르셀로나는 당시 내전에 대한 선전활동과 저항군의 재원을 마련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FC바르셀로나가 시민들에게 단순한 축구클럽의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이유다. 선수들의 유니폼에 상업광고를 부착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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