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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란 월드컵 예선전에서 북한의 남성철 선수가 심판판정에 거칠게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 명령을 받고 있다. 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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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 0-2 패배하자 판정불만 관중 ‘소동’…외신 “보기드문 기회”
남·북한 축구팀이 안방에서 각각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치른 30일,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짜릿한 2-1 승리를 거두었다. 남쪽 경기에 앞서 이날 낮 평양에 열린 경기에서 북한은 이란에 0-2로 분패했다.
이날 낮 방송으로 중계된 북한의 축구경기 패배 소식은 저녁에 있을 한국-우즈베키스탄의 경기에 대한 관심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평양에서 열린 축구경기는 이튿날 외신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승패 자체라기보다 북한이 패한 후 북한 관중이 격렬히 판정에 항의하고 패배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북한선수 태클에 넘어진 뒤 페널티킥 요구하며 심판 밀치자 ‘퇴장’
흥분한 관중, 병·깡통·의자 던져 10분간 경기중단…군·경찰 긴급출동
이날 소동은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경기, 북한이 이란에 0-2로 뒤진 후반 이란 골문 앞에서 북한 선수가 넘어지면서 일어났다.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북한 선수가 이란 선수의 태클로 넘어진 뒤 북한 선수들이 주심을 밀치며 강력하게 벌칙차기를 요구했지만, 주심이 북한선수를 퇴장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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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북한-이란 월드컵 예선전이 끝난 뒤 성난 관중들이 던진 병과 방석들이 축구장 필드에 떨어져 있다. 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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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관중들은 흥분해 병과 깡통, 의자 등을 운동장에 집어던져 경기가 10분간 중단됐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관중들은 해산하지 않고, 퇴장하는 이란 선수단과 심판단에 돌과 병을 던져 일부 심판들이 30분 가까이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관중들은 경기장 밖에서도 심판단과 이란 선수단이 탄 버스를 가로막아, 긴급출동한 군과 경찰이 강제해산했다는 것이다.
외신들 집중보도 “세계가 북한의 군중폭력을 엿본 보기 드문 기회”
로이터, AP, AFP, 교도 등 국제적 통신사들은 30일 서울 혹은 평양발로 평양의 축구경기에서 일어난 이러한 폭력사태를 상세히 전했다.
“세계가 북한의 군중폭력을 엿본 보기 드문 기회”(로이터), “북한의 군중소요 발생 뉴스가 국제언론에 잡히는 것은 희귀한 일”(AFP) 등으로 표현했다.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체제이완” 등 북한사회의 변화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터민(탈북자)들과 북한 전문가는 “전혀 새롭지 않다”는 설명이다.
최정하 숭의동지회 사무국장은 “국내 경기보다는 국제 경기에서 상대국 선수가 심하게 반칙 등을 할 때 야유하는 일은 새로운 게 아니다”며 “북한 사람들이 다혈질이고 승부욕이 강하다 보니 일어난 일이고,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게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탈북자들 “경기장에서 야유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은 북한서 흔하다”
탈북자들의 방송인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도 “월드컵 진출을 가리는 경기여서 그런 행동이 ‘애국심’으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고, 체육경기 자체가 감정싸움이어서 얼마든지 괜찮은 행동이다”며 “후속처리도 정치적 사안처럼 다루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태범 탈북자연합회 회장도 북한에서 ‘비정치적인 활동’은 자유롭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경기장에 뛰어 들어가는 일은 상상할 수 없지만, 야유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은 많다”며 “정치적인 면에서는 통제가 계속되지만, 생활·문화 부분, 특히 체육면에서는 많이 자율성을 줘서 ‘파도타기’ 등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북한 전문가들도 지나친 의미부여와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전문가들 “정치적 집회를 하지못할 뿐, 다혈질 북한사회에선 패싸움도 잦다”
김근식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이 아무리 통제된 사회라고 하지만, 경기장에서 소란을 피우는 정도는 자주 벌어진다”며 “조국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섞여 한 오해를 낳는 것 같다”며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발언이나 집회를 하지 못할 뿐, 공개되지 않았지만 다혈질적인 북한에서 패싸움 등도 자주 벌어진다”고 밝혔다.
구갑우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도 “정상적인 것이고, 특별하게 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게 더 이상하다”며 “이런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북한과 우리 모두에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하는 자체를 의아하게 받아들였다.
3연패로 월드컵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 자국팀 팬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심판 판정. 이에 따른 다소 ‘격렬한 항의’조차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국내외 인식을 어떻게 봐야할까? 외국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아직도 베일에 가려있는 북한의 사회통제도 한몫 했지만….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에서는 정치적인 것만 통제받을 뿐이다”며 “북한에 대한 정보가 없이 편견으로만 보면 북한사람은 사람도 아니다”고 말했다. 김태범 탈북자연합회 회장은 “국제정세가 이란이나 북한에 시선이 주목되면서 외국 언론들이 이번 상황을 이슈화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정하 숭의동지회 사무국장은 “북한도 사람이 사는 동네다”고 말했다.
북 중앙방송, 축구경기 보도하며 판정에 대한 강력항의 장면 내보내
한편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 경기에서 관중들이 심판의 오심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31일 보도했다. 북한 관영매체에서 심판 판정에 대한 관중들의 항의를 방송으로 내보낸 것은, 이번 항의사태가 북한 체제에서 이례적인 일이 아니란 관측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앙방송>은 “우리나라 축구팀과 이란 축구팀간 경기가 어제(30일) 평양에서 진행됐고 이란 축구팀이 2대 0으로 이긴 것으로 되었다”며 “경기가 끝나자 관람자들 모두가 시리아 주심과 부심들의 오심에 분노하여 강력한 항의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은 이에 앞서 30일 오후 9시 30분 이란전을 1시간 분량으로 편집해 녹화중계했다. <중앙텔레비전>은 북한 선수가 이란 골문 앞에서 이란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졌는 데도 반칙이 선언되지 않자 북한 선수들과 관중들이 항의하는 장면 등을 내보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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