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21 18:40
수정 : 2005.04.2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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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초등학교 여자축구 선수들이 20일 봄햇살 가득한 학교 운동장에 모여 해맑게 웃으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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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명의 시골소녀 희망향한 센터링 - 충북 음성 감곡초 여자축구부
2002년 12월 창단한 충북 음성군 감곡면 감곡초등학교 여자축구팀은 전국 23개 초등학교 여자팀 가운데 행정단위가 가장 작은 면에 속해 있다. 동해초등학교 여자축구팀과 함께 가장 작은 지역 연고팀이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선수를 스카우트하지만, 감곡초등 선수들은 순수하게 이 학교 학생들이다. 유니폼·신발 등 운동장구는 모두 학교에서 지급하고, 학부모한테 일절 돈을 걷지도 않는다. 전국대회에서 이렇다할 성적은 없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은 구김살없이 축구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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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을 몰고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한국 여자축구의 튼튼한 미래가 영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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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개뿐인 면 초등팀‥ 소년체전 대표까지
가난해도 축구로 웃음꽃‥ 제2의 박은선 꿈꿔
20일 오후 3시. 6교시 수업을 마친 감곡초등학교 여자축구팀 선수들이 황사 바람 부는 운동장에 모였다. 등교할 때부터 입고온 겨울 유니폼 그대로 운동장에 나온 아이들이 공을 만지고 차고 재잘거린다. 아이들의 얼굴엔 해맑은 미소가 충만하다.
운동장은 장차 ‘여자 이천수·이운재’를 꿈꾸는 ‘시골 천사들’의 작은 보금자리다. 5~6학년이 100명도 안되는 학교에서 뽑은 여자축구선수는 모두 18명. 골잡이 김은지(6학년·1m63)를 빼면, 모두가 1m50 안쪽. 도내 대회에 나가면 ‘난쟁이 팀’으로 불린다.
그러나 지난해 전국소년체전 충북대표로 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는 주축 3명이 빠져나가서인지 4월초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아픔도 겪었다. 인근 괴산에서 태어난 김동기(31) 감독은 “아이들이 지니까 엉엉 우는데, ‘져도 괜찮다’고 설득해도 막무가내였다”며 웃는다.
이곳 선수들은 대개 농사짓는 부모의 아이들이다. 분교가 폐교돼 8~10km 떨어진 두메 산골에서 다니는 선수도 있다. 이규상 교감은 “‘여자가 무슨 축구냐?’는 부모의 반대로 애초 팀조차 구성하기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대개 집안살림이 넉넉치 않은 축구팀 아이들에게 반가운 때는 간식시간. 오후 3시부터 연습을 하면 5시께는 배가 고프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선생님들이 모은 돈으로 빵·우유가 나온다. 매일은 아니다. 이 때문에 김동기 감독은 “점심급식 때 밥 많이 먹고와야 해”라고 말하는 게 일이다. 올 여름에는 잔디운동장에서 본격 연습하게 된다는 꿈에 가슴이 설레인다.
지난해말 국민체육진흥공단 지원금 1150만원 등으로 만든 가로 70m, 세로 40m짜리 잔디가 7월이면 뿌리를 완전히 내리기 때문이다.
충북체육회로부터 월 80만원을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김동기 감독은 “결혼을 했다면 여기서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며 “다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는 게 보람”이라고 말한다.
음성/글·사진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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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이천수·이운재 우리중에서 나올꺼에요”
“바다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안경을 낀 이가연(5학년) 부모는 밭과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지난해 8월 축구팀에 들어가게 된 사연이 애틋하다. 부모들은 “여름철 하루 나절에 가연이가 복숭아 상자 300개를 접어서 일손을 덜어준다”며 축구시키기를 꺼려했다. 그러자, 마침 포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게 된 이규상 교감 선생님 등이 꾀를 냈다. 부모에게 “축구팀에 가연이 보내면 바다 구경시켜 줄게요”라고 유혹한 것이다. 한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가연이는 포항가서 바다도 보고, 탁월한 지구력으로 팀내 부동의 ‘오른쪽 날개 공격수’로 성장한 요즘 살맛이 난다.
“축구가 없다면 희망도 없어요”
수비와 공격을 왔다갔다 하며 전천후로 뛰는 정미옥(6학년)은 4월3일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일 나갔다가 돌아오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숨진 것이다. 전국소년체전 예선 이틀을 앞두고 이 소식을 들은 미옥은 내내 울었다. 집에 있는 아버지는 중증환자여서 소녀가장이나 마찬가지다. 김동기 감독은 “어떻게 불행은 어려운 사람들만 찾아서 다니는지, 가슴이 메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축구가 희망이다. 매일 아침 7시30분 가장 먼저 나와 연습을 하는 게 미옥이다. “공을 차면 어둡게 짓눌린 가슴이 환해져요.”
“우리학교의 군계일학은 저예요”
1m63으로 팀안에서 가장 키가 큰 김은지(6학년)는 유망주다. 킥이 좋고 순간 판단력이 빠르다. 강팀을 만났을 때는 중앙수비수를 보고, 약팀을 만나면 최전방 공격수다.
벌써부터 전국의 유명한 중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 3월 음성군 체육대회에 나가서는 초등학교 100m 달리기대회에서 2등을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여자 이천수’다. 본인도 “이천수 오빠하고 박은선 언니가 팬이예요. 나도 꼭 그런 선수가 될 거예요”라고 말한다.은지는 이날 여자축구 13살 이하 상비군에 뽑혔다는 통보를 받았다.
“신동은 저를 두고 하는 말”
지난해 12월 축구부에 들어온 조하은(6학년)은 천부적인 문지기다. 축구 시작한지 4개월밖에 안됐지만, 예쁘장한 얼굴이 먼지로 덮이고 팔꿈치가 까져도 아랑곳않고 연습하는 독한 소녀다. 4월 소년체전 지역예선 결승에서는 승부차기에서 아깝게 졌는데, 다른 팀 지도자들이 “언제부터 가르쳤느냐?”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왜 문지기가 되려고 했느냐는 질문에 “그냥 좋아 보여요”라고 말한다. 하은은 “이운재 오빠가 좋다”며 ‘여자 이운재’가 될 것이라고 밝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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