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은 잔디가 많은 도시입니다. 어린 선수들은 유흥거리가 그닥 없는 중소 도시인 광양을 갑갑해들 합니다. 하다못해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고 해도 순천이나 여수 쪽으로 나가야 하고, 숙소는 경기장에서 걸어서 3분 거리- 축구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축구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광양 경기장에 야간 경기가 있어 푸른 잔디를 밝히는 야간 조명등이 켜지는 밤이 되면 경기장 근처에는 야시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상인들과 사람이 몰려듭니다. 아이의 손을 잡은 아버지, 남편과 아들의 먹거리를 손에 든 어머니, 개구진 웃음을 사탕처럼 머금은 아이들과, 유니폼이며 머플러며 팀에 대한 충성심을 온 몸으로 발산하는 젊은이들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축구를 보기 위해, 오직 축구만을 위해 왕복 4시간 거리를 오가기 시작했을 때 저는 1만3천석의 전용구장과 마을의 축제와 같은 경기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아주 개인적이지만, 광양은 월드컵이나 챔피언스 리그와 같은 지구촌 거대 퍼포먼스와는 다른, 그러니까 제게는 클럽 축구가 주는, 우리 동네 팀이 주는 만족을 가르쳐준 곳입니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르고 나서, 조용한 도시 광양에 두 명의 월드컵 스타가 급부상했습니다. 김태영과 김남일 입니다. 구단 마케팅을 잘 모르는, 여전히 잘 모르는 K리그 구단들은 그 해 뜨거웠던 여름의 관중들을 모두 다 거품으로 만들고 말았지만, 월드컵 이전에도 축구를 해왔고 그 이후에는 더욱 더 멋진 축구를 보여줬던 이 두 선수를 가지게 된 것이죠.
선수들을, 필드에서 뛰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선수들을 만나 보신 분들은 아실거에요. 축구의 페어플레이 정신만큼이나, 이들이 정직하고 뜨겁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직한 것은 그렇다치고, 왜 뜨겁냐고 물으신다면 "도대체 축구를 얼마만큼 좋아하길래 저렇게 무모하고 아찔한 몸싸움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된 결론입니다.
저들은 머리와 몸과 정신을 사용합니다. 몸은 다치기 쉽고, 머리는 두려움을 느끼기 쉬우며, 정신은 흐트러지기 쉽죠. 이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견디고 저들이 뛰고 있다는 사실, 경기장에서 잔디에서 관중의 야유와 환호를 받으며 뛰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물이 흔들리고 볼을 동료에게 패스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큼 중요한 사실은 없습니다. 90분 경기 안에 선수가 현존하고 있다는 존재감, 그것이 그들에게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이기게 만드는 것일지도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김태영 선수는 항상 유니폼을 입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짧은 유니폼, 어느 날은 긴 유니폼, 어느 날은 마스크를 쓰기도 했었고, 어느 날은 점퍼를 입기도 했지만, 그는 항상 운동을 하거나 운동할 준비를 하거나 운동을 한 뒤의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황선홍 선수나 홍명보 선수나 우리에게 레전드가 된 선수들은 가끔 멋스럽게 경기장 외의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죠.
2003년 겨울 어느 날, 전남 선수들이 연습경기를 치르는 운동장에 있었습니다.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부는 늦겨울이었죠. 그 때, 김도근 선수는 잔부상이 끊이질 않아 재활 중, 마태철 빗장 수비라인의 강철 선수는 은퇴 준비중, 김태영 선수는 필드에서 뛰고 있었어요.
예, 선수는 늙어갑니다. 끝없이 성장하는 어린 선수들이 밀려들고, 그들의 몸은 예전처럼 빛나지 않게 되죠. 마음이 아픈 것은 그들의 정신과 머리만은 그 어느때보다 맑고 정직하며 뜨겁다는 것이죠. 그 마음 만으로는, 그들은 과거처럼 90분 안에서 존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지치고 힘든 얼굴일 법도 한데, 이 선수 늘 그렇듯 웃음을 머금고 걸어옵니다. 손에 땀을 닦은 수건을 들고 말이죠. 그리고 추위에 떨며 연습경기를 지켜본 팬들에게, 안 추워? 밥은 먹었어? 몸 상태 좋지. 와 같은, 말들을 해요. 그리곤 아주 중요한 위로를 받았다는 듯, 다시 구단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갑니다. 경기장에서요? 다들 아시잖아요. 그가 얼마나 투지 넘치고, 비난에 강하며, 팀플레이에 기여하며, 헌신하는 선수인지를요. 헤어지는 시기와 방법은 매우 중요합니다. 팬과 선수, 선수와 그라운드라는 곁길을 가지지 않은 애정관계일때는 더더욱이요. 닉 혼비는 무려 "시즌 중에는 죽고 싶지 않다" 라고 했어요. 그는 절대로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하이버리를 두고는 생을 마감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어떻게 헤어지고 싶었을까, 생각했어요. 김진규에게 7번을 물려주고 싶었다는 이 나이든 수비수는 헤어짐 자체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보다 먼저, 황선홍이 겪었고 이후에는 홍명보가 겪었지만,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구든 피해갈 수 없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아프지 않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가 좀 더 뛰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의 성실함과 그의 올곧음을 더 많은 선수들이 직접보고 배워주길 바래요. 더 많은 관중들이 그에게 박수를 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이 선수는, 그라운드 위에서 헤어지는 것을 택합니다. 예, 알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은퇴경기를 위해 1년간의 재활을 해왔다는 선수, 그는 누가 뭐라해도 한국 축구의 가장 빛나는 영광의 시기를 함께 했고, 그의 몸과 정신과 마음으로 그가 축구를 얼마나 사랑해왔는지 증거했습니다. 곧 있을 스웨덴전에서 국가대표 은퇴식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광양의 잔디를 떠나는 그의 눈에 맺힌 눈물이야말로 그가 몸 담았고 그의 고향이었고 그가 비난에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도 굳건히 지켜준 집과 같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태극마크를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다들 아실거에요. 홍명보 선수는 아무나 태극마크를 달아서는 안된다며, 은퇴 이후 훈련에 합류하면서 옷을 뒤집어입기도 했던 그 태극마크 말입니다.
축구하는 소년의 꿈이며 열망이며 도착점인 그 태극마크를 달고, 그가 다시 멋진 작별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작별, 이런 헤어짐, 그가 23년간 그라운드에서 뛰었던 그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이 시간이 이렇게 아플리 없습니다. 사랑하니까, 돌아온다고 하셨어요. 그라운드를 사랑하는 만큼, 꼭 돌아온다고. 세상에, 이런 가슴 벅찬 로맨스는 축구 이외에는 없는 것이지요. 김태영 선수,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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