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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2 18:51 수정 : 2005.12.22 18:57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날쌘돌이’ 서정원. 연합뉴스

만나봅시다 시련 딛고 ‘제2의 전성기’ 맞은 서정원

시련의 연속. 하늘조차도 무심한가? 한두번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다. 여러차례 좌절도 했다. 그러나 찾는 자에게 길은 있었다. 하늘은 정말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왔다.

‘날쌘돌이’ 서정원(35·SV리트). 한국 나이로 36살의 노장이 ‘오스트리아 프로축구 황태자’가 돼 돌아왔다. 올 2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 입성해 잘츠부르크(2~5월·12경기 2골·2도움)와 SV리트(6~12월·22경기 7골)에서의 10개월. 그는 오스트리아 종합지 <쿠리어>로부터 ‘올해의 축구선수’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스포츠지 <스포르트 보헤>는 2005~2006 전반기 시즌 평가에서, 그를 1부 리그 10개팀 선수 중 1위에 올렸다. 타향에서 더 환영받는 이 선수를 누가 ‘늙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서정원의 올드팬들은 다 안다. 그가 얼마나 큰 경기에 강하고, 얼마나 빠른지를….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 김호 감독의 한국팀은 경기종료 직전까지 1-2로 몰리고 있었다. 그런데 홍명보의 패스를 받은 서정원이 상대 벌칙구역 오른쪽을 전광석화처럼 파고들며 오른발 휘어차기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국내에서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의 가슴은 얼마나 통쾌했던가?

서정원과 부인 윤효진씨가 21일 성남 분당의 한 카페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올해 오스트리아 프로축구 무대에서 서정원은 당시 전성기의 모습으로 부활했다. 동양에서 온 ‘꼬마’ 선수가 장신수비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모습에 현지인들은 신기해 했다. 총알같은 스피드, 순간적으로 방향을 트는 역동성, 기회를 놓치지 않는 골결정력까지…. “애 아빠가 외국 선수들 사이에 있는 것을 보면 꼭 학생같은데, 그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요….” 부인 윤효진(33)씨는 활약상을 한마디로 설명해준다. 1만5천여 리트 주민들은 2부 리그에서 올라온 팀을 1부 중위권으로 이끈 서정원을 영웅 ‘세오(Seo)’로 대접한다.

서(정원)의 현지발음 ‘세오’는 이미 프랑스에서 더 크고 화려했다. 한국축구대표팀 공격수로 잘 나가던 1998년 1월, 서정원은 프랑스 프로축구 1부 리그 스트라스부르에 입단해 데뷔전에서 첫골을 넣은데 이어, 두번째 경기에도 골을 작렬시켜 일약 팀의 간판 골잡이로 떠오른다. 도시는 ‘세오’ 열풍에 휩싸였다. 만약 당시 한국 언론들의 유럽축구에 대한 관심이 지금의 10분의 1만 됐어도, 서정원은 연일 모든 신문에 대서특필됐을 것이다.

그러나 구제금융 한파 시절, 고국의 그 누구도 스트라스부르의 돌풍 ‘세오’를 알아주지 않았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때는 온몸에 가려움증과 물집이 생기는 수두에 걸려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1997~98 시즌 뒤 98~99 시즌 카메룬대표팀 감독 출신의 스트라스부르 사령탑 부임은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그가 카메룬 선수를 중용함에 따라 서정원은 벤치로 밀렸다.

“한 순간에 벤치에 밀린 신세. 보통 사람들은 그 심정을 잘 알지 못합니다.” 서정원은 스트라스부르 관중들이 ‘세오’를 외쳐부를 때 그라운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건 감독의 뜻이 아니라 관중들의 명령이었다. 뛰고 싶었다. 99년 2월 귀국한 것은 ‘야생마가 들판을 그리워하는 심정’ 그것이었다.

K리그 복귀무대에서의 새 생활도 잠시. 8월29일 전남과의 경기에서 왼쪽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당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부인 윤씨는 ‘잘 될거야, 잘 될거야’라며 격려하던 그 때를 회고한다. 희망은 상처에도 새살을 돋게 만드는가 보다. 2000년 1월 재활에 성공했고, 이후 수원 삼성의 중추로 지난해까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올해 1월 수원은 팀 코치를 제안했으나 내키지 않았다. “특별히 지도자 수업을 받은 것도 없고, 공부도 부족한 것 같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도전한 게 오스트리아 무대였다. 스트라스부르 입단 때 감독이었던 프랑스 출신 르네 감독이 중간다리를 놔 주었다. 잘츠부르크에서 리트로 간 것은, 하인츠 호흐하우저 리트 감독의 절대적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수로 뛰면서 코칭기술을 배우고, 현지에서 A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생각이다. 서정원은 유럽과 한국 축구문화의 가장 큰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그 쪽에서는 20대와 30대를 특별히 가르지 않고 필요에 의해 선수를 영입하고 활용한다. 우리는 30을 넘으면 곧 노장이라고 부르는데 정말 동의할 수 없다.” 경기도 분당 집에서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서정원은 내년 1월7일 출국한다. 앞으로도 몇년간 ‘오스트리아 황태자’로 군림하기 위해….

성남/글·사진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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