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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식스맨, 우승위한 ‘+α’ |
[김창금 기자의 튄공잡기]
“식스맨(여섯번째 선수)들 정말 대단해. 난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농구판의 ‘대통령’으로까지 불린 허재가 은퇴 전 한 얘기다. 초등학교 때부터 주전만 꿰찼던 허재는 몸이 안 좋아 스스로 출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늘 베스트5였다. 그러나 2003년 신기성의 복귀로 ‘식스맨’으로 벤치에 앉는 기회가 많아지자 그 때서야 식스맨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편함은 몸에서부터 온다. 경기 시작 전 체육관에서 스트레칭과 슛 연습 등으로 몸을 데워놓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몸은 벤치 위에서 급격히 식어간다.
그러다 갑자기 감독이 불러 코트로 나가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수영장에서 한참 팔을 제치고 나온 것처럼 손발이 뻣뻣하고, 손끝의 감각이 둔하진다는 게 그들의 얘기다. 종종 승패가 결정된 4쿼터 말 식스맨들이 대거 등장해 쉬운 슛을 놓칠 때, 팬들은 “어떻게 저런 것도 놓칠까?”라며 의아해 한다. 그러나 대학시절 날고 기었던 한 식스맨은 “처음 코트에 들어가 3분간 뛸 때 가장 힘들다. 숨이 목까지 차오른 데 죽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
프로는 ‘더 뛰는 놈이, 더 잘할 수밖에’ 없는 기득권의 세계. 이상민, 문경은 등 프로 9년차 선수들은 나이를 먹어도 결코 주전 자리를 빼앗기지 않는다. 기회를 원천적으로 빼앗기는 식스맨들의 열세 구조는 더욱 고착화한다.
3분짜리, 5분짜리 등 팀 전술에 맞춰 기능적으로 규격·분업화되는 것도 식스맨의 비애다. 이런 까닭에 3분짜리 선수가 30분을 뛰는 기회를 잡아도 득점을 10배 이상 높이지 못하고 3분 득점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스맨의 운명에 역류하는 ‘이단아’들이 있다. 모비스의 식스맨 이병석(연봉 6750만원)은 올 시즌 팀의 간판 슈터 우지원(연봉 2억3500만원)의 부진을 뒷감당하면서 기량발전상을 받는 등 새 스타로 떴다. 삼성 강혁은 식스맨의 한계를 넘어서는 담대함과 해결사 구실로 안준호 감독을 기쁘게 했다. 티지삼보의 신종석, 케이씨씨의 표명일, 에스비에스의 은희석 등도 올 시즌 ‘빛나는 식스맨’들이었다.
낮은 곳이 없다면 높은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식스맨들은 농구판의 낮은 지대에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인간 승리에 코트는 생동감이 넘치고 새 피가 돈다. 그들이 없다면 코트의 주연도 없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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