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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2 18:56 수정 : 2005.04.22 18:56

“프로도 맞았는데...” 냉가슴

“구두 신은 채 머리 박고 있는 선수 뒷목을 무자비하게 밟아버리고, 다른 선수는 걷어차고, 등까지 짓이겨 버리는….”

지난 14일 배구팬 김아무개씨는 한 프로배구 감독이 경기에 진 선수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경기가 끝난 뒤 천안 유관순체육관 대기실에서 벌어지는 선수 폭행 현장을 우연히 엿봤던 김씨는 이 사실을 19일 한국배구연맹(KOVO)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 당사자인 신영철 엘지화재 감독은 22일 연맹 홈페이지에 “14일 한국전력과의 경기 후 평정심을 잃고 저지른 불미스런 행동에 대해 팬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머리 숙였고, 구단은 3개월 감봉의 중징계를 내렸다.

아마추어 선수는 물론, 프로선수까지 매맞아 가며 운동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2005년 4월 벌어진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 선수는 맞아도 말을 못한다=엘지화재 선수 폭행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한 남자 프로배구 선수는 “감독의 선수 폭행은 어느 구단에나 다 있는 일이다. 선수들이 말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새끼 ○새끼라는 욕은 경기 중에도 수시로 듣는다”고 실토했다.

남자팀만이 아니다. 올 시즌 초반 한 여자배구팀 감독이 대전에서 훈련 중 실수를 저지른 새내기를 불러내더니 “정신 차려”라고 호통을 치며 뺨을 세차게 때렸다. 한 프로선수는 “프로가 돼 은퇴하면 모기업의 사원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감독의 힘은 더 세졌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 배구 선수는 “운동을 포기하지 못해 비인격적인 처사에 맞설 엄두를 못낸다”고 말했다.

◇ 지도자들, “잘 되라는 뜻에서 때린다”=프로배구의 한 감독은 “스포츠에서 선수를 담금질시키다 보면 때릴 수도 있다. 선수가 잘 되라고 하는 것”이라며 “인격이나 자긍심을 해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이 지도자는 또 “선수들에게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구시대적 인식 때문에 지도자들은 프로에서도 ‘주먹’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가 2005년 1~3월 초·중·고·대학 선수 1600명, 지도자 200명, 학부모 120명,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 120명 등 2040명을 대상으로 한 ‘선수 폭력 실태 조사’를 보면, 지도자와 학부모의 절반 이상이 구타는 필요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실제 이런 환경에서 선수의 78.1%가 구타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 대책은 없나?=최근 쇼트트랙과 싱크로나이즈드(수중발레) 등 종목에서 구타 사건 등이 불거지자 대한체육회는 22일 선수에 대한 폭력행위 근절을 위해 선수보호위원회와 선수고충처리센터를 5월중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각종 주요 대회나 선수촌 입촌 때에는 ‘선수 인권보장 선언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학습권 보장을 위한 스포츠클럽 활성화 및 체육특기자 선발규정 개정도 건의하기로 했다.

나진균 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은 “구타 풍조를 막으려면 단호하게 실정법에 따라 해당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그동안 체육계는 이런 구타사건에 너무 관대했다. 이래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신문선 축구해설가는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자극(구타)과 반사에 습관화돼 있다”며 “학원스포츠 지도자부터 구타를 피하고, 선수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창금 전종휘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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