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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사라예보 신화’ 주인공…‘삭막하고 억센 곳’ 여성 주인장으로 이에리사 선수촌장은 △1954년 충남 보령 출생
△1973년 서울여상 졸업, 신탁은행 입단
△1980년 서독 FTG 프랑크푸르트팀 코치 겸 선수
△1985년 경희대 탁구코치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대표 감독
△1990년 명지대 졸업
△1994~2000년 현대백화점 여자탁구 감독
△1996년 명지대 이학박사
△2000년~현재 용인대 사회체육학과 교수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대표 감독
△2005년 1월 겨울유니버시아드 여자감독 <입상 경력> △1970년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주니어부 개인단식 우승
△1972년 스칸디나비아오픈 탁구대회 개인단식, 복식 우승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
△1976년 서독 국제오픈탁구선수권대회 개인 단복식 우승 “어른들 욕심이 선수를 운동기계로 만들어” 태릉선수촌은 아직은 폐쇄된 공간이다.
정문으로 들어가 왼쪽에 있는 체력훈련장 ‘월계관’에는 육중한 쇳덩어리를 매단 각종 기구들이 100평 남짓한 공간을 메우고 있다. 낯설다. 천정엔 근력을 다지기 위한 굵은 동앗줄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기가 질린다. 이곳에서 선수들은 언젠가는 올 ‘금메달 영광’을 향해 욕망과 자유를 가두고 극한을 향해 몸을 담금질 한다. 그들이 억제된 젊음과 욕망을 참고 남몰래 땀 흘리는 묵묵한 노력을 누가 알 수 있을까? 개나리, 철쭉, 벚꽃 등 갖가지 화려한 꽃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어 한없이 평화롭게 보이는 선수촌. 그러나 이곳은 고난의 땅이며, 일상과 거리를 두고 있는 ‘외딴 섬’이다. 이런 삭막하고 억센 곳에 여성 주인장이 들어섰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이름에서 에리사라는 부분을 차용해 이국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 1973년 ‘사라예보 신화’의 주인공 이에리사(51) 촌장. 역대 어느 촌장도 넉넉함과 따뜻함을 갖추지 않았으랴만, 1966년 선수촌 개관 이래 최초의 여성촌장이어서 그런지 촌장실마저 화사해 보인다. 의욕과 활력이 넘치는 촌장의 말씨에는 600명의 입촌 선수를 관리하는 최고 수장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부임해보니 선수촌 예산이 의외로 적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래가지고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촌장은 “갈수록 스포츠 관리 영역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데 인력이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세계 스포츠 10강 지위에 맞는 규모와 예산을 갖추도록 4년 동안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가장 먼저 신경을 쓰고 싶은 부분은 지도자와 선수들의 처우 개선이다. 중3 때 이미 탁구 국가대표로 발탁돼 태릉에서 잔뼈가 굵었던 촌장은 “잠자는 것, 먹는 것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료보험, 연금보험, 퇴직금도 없이 1년 365일 선수촌에 머물러야 하는 지도자들이 세금 포함해 월 170만원~300만원 월급을 받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촌장은 “몇년 전보다는 급여가 크게 늘어난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지도자의 경우 200만원~400만원까지는 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한다. 월 50만원을 받는 입촌 선수들의 수당도 더 올릴 계획이다. 엘리트 스포츠 선수 출신으로 탁구인 가운데 가장 먼저 박사모를 쓴 그는 1996년 명지대에서 ‘생활체육 참가와 직장인의 여가만족, 여가몰입 및 생활만족의 관계’란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당연히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의 조화와 균형에 대한 생각도 각별하다. 선수촌 예산 의외로 적어…이래가지고 스포츠강국?
지도자들 의료보험^퇴직금도 없이 1년 365일…
엘리트스포츠 전에 학교에서 같이 땀흘리는 체험을 그는 메달을 딸 수 있는 특정 종목 편식증에 걸린 한국 엘리트 스포츠에 ‘균형된 영양’을 공급하겠다고 말한다. 촌장은 “수영과 육상 등 기초 종목에서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 뒤지는 이유는 지원체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가능성 있는 종목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다리면서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의 허들 선수들이 선전하고, 최근 스케이팅 종목에서도 간간이 좋은 성적 소식이 날아들고 있는 것은 희망을 보여준다. 촌장은 예산 사용과 관련된 결제가 올라오면 종목 지원에 관한 ‘명백한 기준’과 함께 ‘가능성 있는 기초종목’에 비중을 둘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생활체육이 4, 5살 때 시작되는 유럽과 달리, 어른이 돼서야 생활체육에 입문하는 한국적 현실에서는 학교체육이 활성화되는 것도 급선무다. 촌장은 “학교에서 체육이 선택사항인데 누가 스포츠를 시키려 하겠느냐?”며 “엘리트 스포츠 이전에 학교나 클럽에서 스포츠를 통해 같이 땀 흘리는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인적자원부가 나서야 한다는 게 촌장의 판단이다. 학교체육 수업을 정상화시키고, 특별활동 부활, 운동부 육성을 교육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얘기다. 공부 안하는 운동선수라는 현재의 기형적 학원 엘리트스포츠의 양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촌장은 “우리가 어렸을 때는 공부 다하고 운동했다”며 “어른들의 과욕과 욕심이 운동선수를 비정상적인 운동기계로 만들었다”고 성토한다. 성적 지상주의로 인한 승부조작, 특기생 대학입시제도로 인한 지도자와 학부모의 음성적인 거래 관행 등이 이런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1973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단체전 금메달로 한국 구기 사상 최초의 낭보를 전했고, 1988년 여자탁구 감독으로 복식 금메달을 일궈내 리더십을 인정받은 촌장. 아직 미혼인 채 탁구 외길 인생을 살아온 과정에서 여성 스포츠인이 겪어야 하는 한계와 낭패감이 없었을까? 촌장은 이 대목에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지금은 남자들도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옛날에는 여자가 한국 스포츠를 짊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문제는 결혼에서부터 운명이 갈린다. 여자는 결혼하면 선수생활이 끝이다. 반면, 남자는 직업으로 계속 운동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성 중심적이고, 남자 위주의 한국 스포츠 지형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촌장은 “남성들은 위·아래의 탄력성이 좋아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지도자로 탈바꿈하기가 여성보다 쉽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무조건 피해자는 아니다. 촌장은 “앉아서 목소리만 높여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남성중심 구조 아래서 여성이 새로운 틀을 만들려면 더 많이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도 변화하고 있다. 촌장은 “내가 촌장이 될 것으로 누가 생각했겠는가?”라며 “준비하는 자만이 쓰임을 받는다”라고 강조했다. 촌장은 14일 쇼트트랙 선수와 부모들이 선수촌 안에서 지도자에 대한 반발로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 최고 책임자로서 ‘쇼트트랙 선수단 퇴촌’이라는 강경조처를 취했다. 이에 대해 촌장은 “옛날에는 부모들이 선수촌에 들어오려는 생각도 안했고, 선수들도 지도자한테 예의를 다했다”며 “선수와 지도자의 대화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고 분석했다. 촌장은 “지도자 또한 과거에는 명령만 해도 됐지만, 지금은 선수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인간적으로 교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선수는 운동에만 신경을 쓰고, 지도자가 선수를 위해 일한다라고 느낄 때 실력이 향상되고, 때로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도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촌장은 앞으로 선수촌내 ‘지도자를 위한 특강’을 자주 개설해 교육을 강화하고 현장을 자주 방문하면서 지도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힐 생각이다. 종종 스포츠 현장에서 일어나는 집행부-지도자-선수-학부모간의 갈등과 대립과 관련해서는 “이 시대가 너무 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다보니, 그게 스포츠까지 왔다”며 “학부모들도 선수를 볼모로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고 일갈했다. 촌장은 선수촌을 ‘시민과 더 가깝게’ 만들고 싶은 게 욕심이다. 촌장은 “선수촌은 딱딱하고 엄숙하고 경직되고 외부와 격리돼 있다는 인상을 준다”며 “가능한 일반인들에게 선수촌 견학의 기회를 많이 주는 ‘열린 선수촌’”을 만들겠다고 했다. 물론 대표선수도 이용하기 힘든 시설을 개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훈련에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땀흘리는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문호를 최대한 열겠다는 뜻이다. ‘관중 있는 곳에, 선수들의 눈빛도 달라진다’는 생각이다. 촌장은 언론에도 한 마디 당부했다. “시대가 변해 스포츠가 때로 사회적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메달을 위해 땀흘리는 선수들이 있다. 세태가 가는대로 다루지 말고 체육의 기둥이 흔들리지 않게 보도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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