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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1 21:31 수정 : 2005.05.01 21:31

1일 새벽 4시45분 북극점을 밟음으로써 산악 그랜드슬램을 이룬 박영석씨(맨 앞)를 비롯한 원정대가 얼음판이 서로 부딪혀 생긴 ‘난빙’을 헤쳐가고 있다. <동아일보> 제공



1%의 가능성에 한발…한발…

‘드디어 해냈다!’

1일 새벽 북극점에 닿아 인류사상 처음으로 ‘산악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이룬 박영석(골드윈 코리아 이사)씨. 그는 “위성 위치확인 장치(GPS)로 북위 90도에 3m, 2m, 1m로 다가가는 순간 다리가 떨렸다. ‘내가 정말 왔나?’ 의심이 들었다.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북위 90도에 3m. 2m, 1m…내가 정말 왔나?”
히말라야 14봉·7대륙 최고봉 완등 이은 ‘위업’

그 찰나의 순간, 그는 지구상에서 누구도 해내지 못한 남·북 극점과 에베레스트산 정상,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일곱 대륙 최고봉 모두를 디딘 ‘모험가’로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사방이 얼음뿐인 대륙의 정점에서 그는 엉엉 울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동안의 좌절과 회한을 한꺼번에 날려보내는 마음속 함성의 다른 표현이었다.

산악인이면 누구나 꿈을 꾸지만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산악 그랜드슬램 도전. 그는 히말라야 14좌 완등(2001년 7월)에 이어 일곱 대륙 최고봉 완등(2002년 12월) 이후 가속기를 세게 밟았다. 2001년 엄홍길씨에 이어 국내 두번째로, 세계 아홉번째로 히말라야 열네 봉우리에 모두 올랐다. 그러나 늘 엄홍길 다음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그는 2003년 2월 북극점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산악원정과 다른 낯섦과 악천후, 그리고 부상 탓에 절반을 가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남극으로 방향을 튼 그는 이듬해 1월13일 넉 달의 험난한 여정 끝에 남극점에 깃발을 꽂았다.


이어 올 2월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며 재차 북극점 원정에 나섰다. 그러나 북극점은 쉽게 문을 열지 않았다. 3월9일 워드헌트 출발부터 리드(얼음이 갈라져 바닷물이 드러난 곳), 뾰족하게 솟은 크고 작은 난빙대(얼음산), 크레바스(빙하지대의 갈라진 틈) 등을 만났다. 바다 위의 얼음이 남쪽으로 움직이면서 전진을 해도 헛수고만 하는 때도 있었다.

4명의 대원 각자가 100㎏의 썰매를 짊어지고 설원을 가로 지르는 것 또한 한걸음 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장비담당 홍성택(39·㈜대한논리속독), 식량담당 오희준(35·영천산악회), 의료·인터넷 담당 정찬일(25·용인대 졸) 등 대원들의 얼굴과 손발은 동상을 입지 않은 곳이 없다. 얼음바다에 빠지면 옷을 말리느라 꼬박 하루를 움직이지 못하고 텐트 안에 묶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을 묶어 세운 것은 1%의 가능성. 박씨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조로 버텼다”고 말했다.



귀환을 앞둔 박씨는 이날 “비행기가 북극점까지 오는 데는 기상 상태 때문에 일주일 정도 걸린다. 지금 식량이 거의 다 떨어져 걱정된다”고 전해 왔다. 아직 그의 모험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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