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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식(왼쪽), 박정헌(오른쪽)씨 (사진=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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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문학으로서는 드물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의 내용이다. 초인적인 사투를 벌인 심슨이 혹독한 기억들을 글로 새긴 것이다. 지난 1월16일 히말라야 촐라체(6천440m) 5천300m지점. 조난을 당해 빙벽에 매달린 거벽 등반가 박정헌씨는 예이츠가 직면했던 숨막히는 갈등에 던져졌다. '자일을 끊어야 하나...'는 생각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25m밑 크레바스 속에는 발을 헛디뎌 곤두박질 친 후배 최강식씨가 박씨와 연결된 자일에 매달려있었다. 최씨가 움직일 때마다 자일은 박씨의 부러진 갈비뼈를 압박해와 내장을 후벼파는 고통을 안겨줬다. 부상당한 박씨가 자신보다 무거운 최씨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 게다가 최씨는 두 다리까지 부러져 있었다. 박씨가 칼만 자일에 갖다된다면 그들의 처절한 고통은 그렇게 끝날 수 있었다.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사는 것이 자일파티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자 박씨는 칼을 잊었다. 그리고 3시간여의 사투 끝에 최씨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 박씨의 손을 잡고야 말았다. 생사의 갈림길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죽음을 건 사투에 안경마저 날아가 버린박씨는 최씨의 다리가 되었고 최씨는 박씨의 눈이 되어 빙벽과 맞서 싸우며 내려와야 했다. 배낭마저 버린 그들은 맨몸으로 히말라야의 거센 눈보라 속에 밤을 지새웠다. 한발한발 내딜 때마다 뼈속까지 스며드는 모진 고통과 죽음에 공포 속에 결국암벽지대를 빠져나왔으나 사람도 민가도 보이지 않았다. 빨리 구조 요청을 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생각이 들자 박씨는 최씨를 두고 먼저 하산하기 시작했다. 3시간 만에 움막을 발견했으나 사람의 숨결은 느껴지지 않았고 박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최씨는 심슨처럼 기약없이 혼자 남겨졌다. 살고자 하는 최씨의 사투는 다시 시작됐다. 5시간 엉금엉금 기어 내려간 최씨는 박씨가 쓰러져 있는 움막에 도착했고이들은 조난당한지 5일째 구조됐다. 생명은 건졌지만 이들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안겨준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만 됐다. 동상에 걸린 손발이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박씨는 여덟개의 손가락과 두개의 발가락, 최씨 역시 손가락과 발가락 대부분을 잘라내야 했던 것이다. 손가락 절단은 거벽 등반가에게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박씨는 '아직 엄지손가락이 남았다'고 희망을 말한다. 고산의 정상에 오르려는 희망이 아니다. 박씨는 이제 마음의 정상에 오르려는 채비를 하고 있다. 히말라야는 여덟 손가락을 앗아갔지만 대신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산에 대한 사랑을 그에게 주었다. 박씨는 히말라야로부터 받은 흉한 훈장, 그리고 히말라야가 준 선물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끈'이라는 제목의 책에 담았다. '끈'은 그가, 그리고 누군가 마음의산에 오는 도중 지치고 힘들때 돌아 볼 기록물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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