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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18:36 수정 : 2005.07.22 09:57

서울 문일중 태기창 축구감독

[학교스포츠긴급점검] 내 아이 운동부 보내기 겁난다

1.누가 이들을 때리는가?
2.우리도 외박 나가고, 휴가 가요.
3.학생인가? 프로선수인가?
4.지도자가 우선 바뀌어야 한다
5.금메달에 희생된 수많은 선수들
6.대학을 바꾸자, 연고대부터

지난 5일 서울 효창운동장 라커룸. 방금 결승전에서 진 태기창(33) 문일중 축구팀 감독이 머리를 푹 숙이고 괴로워한다. 올해 두번째 준우승이다. ‘아! 왜 이렇게 안되지’라는 듯, 머리를 감싼 채 패배의 아픔을 혼자서 삭인다. 승패를 먹고사는 감독은 늘 고독하다.

태 감독은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선수들에게 고함을 치지 않는다. 흥분을 하거나 격한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경기 뒤 선수들도 주눅들지 않는다. 진 것을 억울해 하며 몇 명은 소리내 울먹인다. 강압적인 훈련과 패배에 극도로 위축 되는 한국 학원 운동선수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감정을 폭발하는 것은 특이한 광경이다.

서울 문일중 태기창 축구감독

강압훈련 버리고 새 지도자상 실천
합숙 줄여…주2일 영·수 과외도 부족한 운동시간 기술축구로 보완

문일중 출신으로 2002년 10월 부임한 태 감독은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 상을 만들어 나가는 사례다. 선수 폭력, 공부 안 하기, 승부 지상주의는 태 감독한테는 범접할 수 없는 말이다. “아이들 때리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참습니다. 나부터 바뀌어야 하니까요.”

아주대 문지기 출신인 태 감독도 선수 시절 수도 없이 맞았다. 반짝 효과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지도자가 때리고, 선배가 후배를 때리는 모습이 바뀌지 않고는 “운동선수는 늘 저렇다”라는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뼛속에 박혔다.

밤 늦게까지 아이들 관리해야 하는 합숙소. 그래서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지만 44명 선수 가운데 통학하기 어려운 경기도나 충북 지역의 20명을 위해 합숙소를 운영한다. 그러나 나머지는 합숙을 원하더라도 받아주지 않고, 집으로 보낸다. 웬만하면 아침 운동을 생략한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운동하는 것보다 자는 게 성장에 좋기 때문이다.”


수업 참가는 기본이다. 선수들을 수업에 꼬박 참여시키자 처음에는 “없는 게 낫다” “수업 안 된다”는 선생님들의 말에 속이 상했다. 그래도 자꾸 올려보냈더니, 지금은 “태도가 아주 좋아졌다”고 한단다. 방과 후 오후 훈련이 끝나면 화·목·토 3일은 요가를 시키고, 수·금 2일은 영어·수학 과외를 시켜 운동 하나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과외는 학습지 선생이 와서 학년 별로 2명분의 수업료만 받고 가르친다. 모두 “운동선수는 안된다”라는 생각을 바꾸고 싶은 오기에서 나온 방침이다.

그럼 언제 훈련하나?

태 감독에게 오후 3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가 황금시간대다. 수업 뒤 그 때만 시간이 나고, 그나마 가을·겨울로 넘어가면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대신 기술 축구로 시간 부족을 보완한다. 2000년말부터 4개월 동안 브라질 카레카 축구학교 유학 때 느낀 게 도움이 됐다. 그는 “공을 예쁘게, 기술적으로 차는 것을 원한다”고 말한다. 실제 문일중 축구하는 것을 보면 매우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큰 대회를 앞두고도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인지 준우승이 많다. 지난해도 두번이나 준우승에서 멈췄다.

이쯤 되면 학교에서는 우승을 하라는 부담을 줄 만하다. 이에 대해 태 감독은 모교이고, 학교 선생님들이 대부분 선배들이어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한다. 신분에 대해서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괜찮다.”

월급은 선수 학부모들이 걷어서 받는 230만원. 이 정도면 코치 때 받던 120만원의 두 배로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결혼해 학교 가까운 데 보증금 3천만원, 월세 20만원짜리 단칸 신혼방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면 집을 늘려야 할 게 걱정이란다. 스트레스 받아도 술은 자주 마시지 못한다. 친구들과 만나 호프집에서 치킨 하나 시켜놓고 먹는 게 전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철학에 대해, 그는 “저의 인간성과 능력을 보고 온 아이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가르칠 수 있는 것이 행복하고, 져도 서로 격려하는 선수들이 미덥다”라고 말한다.

 

지도자 양성·관리 시스템 유명무실

재교육도 없어…학생선수 60% 지도자에 불만

21면 지도자 양성 · 관리 시스템 유명무실

“나 고등학교 다닐 때 감독이 때리지 않았다.”

1960년대 진주고를 다닌 조광래 전 FC서울 감독은 학원스포츠 폭력 등 문제에 대해 늘 “지도자가 바뀌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자신의 경험을 보면 지도자에 따라 한 선수의 운명이 바뀌고, 길게는 한 나라 스포츠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2005년 국내 학원 운동부 선수들의 지도자 신뢰도는 바닥에 가깝다.

올해 대한체육회가 1600명 학원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선수폭력 실태조사 및 근절대책’을 보면, 초·중·고·대학 선수 응답자 60.9%가 지도자의 훈련 지도방법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저 그렇다”(25.1%)까지 포함하면 학원 운동부 선수들의 86%는 지도자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선수들이 가장 원하는 지도자로 ‘선수를 아끼고 인격적인 사람’(41.1%)을 꼽고, ‘이론과 실기능력을 보유한 사람’(32.2%)을 다음 순위로 꼽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체육회나 각급 협회는 지도자 육성 부문은 거의 방치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문화관광부)에서 발급하는 1·2급 경기지도자 자격증 제도는 1974년 시작돼 지난해까지 31년 동안 1만4958명을 배출했다. 지난해만도 1급(26명·대표팀 지도 가능), 2급(1017명)이 배출됐다.

외형적으로는 지도자의 양성·보급이 잘 이뤄지는 것 같다. 그러나 자격증을 받은 지도자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되거나 관리되지 않고 있다. 한 종목의 지도자가 ㄱ초등학교에서 ㄴ초등학교로 옮겨가도 모른다. 재교육은 아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등 각급 협회도 나름대로 자격증(1·2·3급)을 발급하지만, 축구 종목 외에는 대개 연수에 필요한 재원이나 시설 부족으로 자격증 발급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더욱이 지도자를 영입하는 학교 쪽에서는 자격증 여부보다는 인맥 등으로 지도자를 뽑는 형편이어서, 전문성과 자질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학교는 운동부나 지도자에 대한 예산이 전혀 없어 학부모의 돈으로 운동부를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용식 체육과학연구원 연구원은 “지도자 자질 향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연수와 재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며 “일본의 ‘스포츠리더 뱅크’처럼 모든 지도자를 등록시켜 관리하는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원스포츠의 폭력과 비리 제보와 개인 경험담을 받습니다.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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