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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1 21:25 수정 : 2005.08.01 21:38

화요포커스 - 한국럭비 산실 ‘서울 경기장’

주창균씨가 사재로 지은 전용구장
32년간 선수들 땀·환호 고스란히 배어
최근 주변 재개발 바람 탓 앞날 불안

지난달 20일 오후 뙤약볕이 내리쬐는 서울 구로구 오류 2동 서울럭비경기장. 서울사대부고와 충북고의 종별럭비대회 고등부 8강전이 열기를 뿜었다.

“플레이, 플레이 충북고”, “사대부고, 파이팅! 파이팅!”…. 철제 앵글로 만든 서너 계단의 관중석에는 학교 관계자와 선수 가족 등 50~60여명이 패트병을 요란하게 두드리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경기가 끝나자 수동식 전광판이 충북고의 18-17, 1점차 승리를 알렸다. 아깝게 진 서울사대부고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땅을 쳤다.

럭비선수들의 땀과 환호, 그리고 눈물이 밴 오류동 럭비구장. 공식 이름은 ‘서울럭비경기장’이다. “럭비선수라면 이 경기장을 밟지 않은 선수가 없을 거예요. 한국럭비를 이만큼 키운 곳이죠.” 본부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럭비인들이 입을 모았다.

경기장 관리를 맡은 ‘현송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이 경기장의 32년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달 22일 잔디구장에서 배재고와 서울북공고 선수들이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격렬하게 경기를 벌이고 있다.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오류동 럭비구장은 1973년 당시 대한럭비협회 부회장이며 일신제강 창업주였던 주창균(84) 현 대한럭비협회 명예회장이 대표팀 전력향상을 위해 사재 10억여원을 털어 지었다. 일신제강 인근 1만7천여평의 터에 잔디구장 3개(주경기장 1개·보조경기장 2개)와 흙구장 1개 등 모두 4개의 럭비전용구장을 조성한 것이다. “축구도 전용구장이 없던 시절에 럭비가 전용구장이 생겼으니 그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이경수(72) 럭비협회 부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74년 스리랑카 아시아럭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이곳에서 훈련했던 윤재선(58) 럭비협회 전무이사는 “선수들이 잔디에 뒹굴고 싶어 일부러 넘어지기도 했다”고 웃었다.

잔디에서 뒹글 수 있는 전용구장은 우리나라 럭비 성장에 큰 구실을 했다. 외형적으로 15인제는 세계 20위권에 들고, 7인제는 세계 4위까지 오른 적이 있다.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그동안 금메달을 4개나 땄다.

하지만, 80년대 초 장영자 사건에 연루된 일신제강의 부도로 럭비구장도 타격을 받았다. 현송문화재단은 돈줄이 끊기자 잔디 보조경기장 2개를 다른 용도로 임대했고, 현재 공장과 골프연습장이 들어섰다. 잔디구장이 3개에서 1개로 줄어 흙구장 경기가 더욱 잦아졌다. 또 주경기장 선수대기실과 샤워실은 오갈데가 없어진 재단 사무실로 쓰이게 됐다.


최근엔 구장 부근에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앞날을 알 수 없게 됐다. 더욱이 럭비가 2012년 런던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해 소외감은 더욱 커졌다. “어려울 때이니, 더더욱 오류동 럭비구장을 지켜야죠.” 럭비인들의 바람은 소박하지만 한결같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홍콩·영국 다니며 전용구장 구상”

주창균 럭비협회 명예회장

주창균(84·사진) 대한럭비협회 명예회장은 16살 때인 신의주고보 시절 “축구와 테니스는 시시해서” 온몸으로 부닥치는 럭비에 빠졌다. 중 2년 때 대입 참고서를 두번이나 독파했던 그가 럭비부에 들어가자, 학교에는 “우리 학교 수재가 럭비선수가 됐다”는 말이 퍼질 정도였다고 한다.

일본 야마구치대 공학부 졸업 뒤 철강업계에 뛰어들었지만, 그의 ‘럭비사랑’은 대한럭비협회 회장, 아시아럭비연맹 회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70년대 초 한국의 럭비실력은 그를 실망시켰다. “팀워크도 엉망이었고 체력도 달려 후반엔 걷다시피했어요. 원인은 마음놓고 연습할 구장이 없었기 때문이죠.”

당시에 쓸만한 경기장은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 뿐이었다. 하지만 구장을 빌리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꿩 대신 닭’으로 사용한 고려대 구장은 왕모래 때문에 태클을 엄두도 못냈다. 주 명예회장은 럭비구장을 짓겠다고 마음먹고 틈만나면 럭비 선진국인 영국과 홍콩 등의 구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오류동에 럭비구장 4개를 조성했다.

30여년의 세월은 이 곳에도 재개발 바람을 몰고왔다. “자식처럼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오류동에서 밀려난다면 인근에라도 꼭 대체구장을 지어야죠.”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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