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직하게 성장한 큰 아들과 ‘돌아온 탕아’.
지난 주 열린 프로농구 신인 선발(2일)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된 방성윤(23)과 8순위로 뽑힌 정상헌(23)이 농구판의 뜨거운 화제로 등장했다. 고교 랭킹 1위였던 동갑내기 두 선수의 맞대결이 다음 시즌 프로농구판에서 이뤄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방성윤은 검증된 실력파로, 정상헌보다는 우월한 위치에 있다. 현주엽의 무게감과 이상민의 3점슛 재능을 갖추고 있다는 방성윤은 2002 아시아경기대회 대표선수로 뽑히는 등 일찌감치 탄탄대로를 걸었다. 특유의 배짱으로 지금은 미국프로농구(NBA) 하부리그 엔비디엘(NBDL) 로어노크 대즐에서 뛰면서 ‘큰 무대’ 경험을 쌓고 있다. 그를 지명한 케이티에프(KTF)도 방성윤의 엔비에이 도전에 일정기간 기회를 줄 것으로 보여, 방성윤은 농구 귀족의 특권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에 비해 오리온스가 지명한 정상헌은 마치 가출했다 돌아온 둘째 아들 꼴이다. 그는 경복고 시절 휘문고의 방성윤과 함께 최고의 선수로 꼽혔다. 졸업 뒤 방성윤은 연세대, 그는 고려대로 진학했다. 정상헌을 가르친 이충희 전 고려대 감독은 “청소년 대표로 국제대회 나갔을 때는 정말 잘한 선수였다”며 아직도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는 1m91의 큰 키로 포인트 가드를 맡았고, 탄력과 시야, 뛰어난 패스 능력으로 ‘장차 이상민보다 나을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고려대 2학년 때 자퇴를 하면서 농구팬의 기억에서 잊혔다. 정상헌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농구를 했다. 대학가면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은 생활이 반복됐고 자유로운 것도 없었다”고 팀 이탈 배경을 설명했다. 농구부 합숙문화, 선·후배간의 규율, 강도 높은 훈련 등에 내심 실망했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해 한 대학 감독 출신 농구인은 “그 정도 어려움도 참아내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남들은 다 4학년 마치고 드래프트 나가는데”라며 따끔하게 꼬집었다.
정상헌도 겸연쩍은 모습이다. 그러나 주눅이 들기보다는 옛 동료에게 가까이 다가가 벽을 허무는 등 적극적으로 새로운 무대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00㎏이 넘게 불어난 몸 때문에 동작은 느리지만 공을 돌리는 모습에서는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이 때문에 ‘잘만 다듬으면’ 다음 시즌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진 오리온스 감독도 지명 뒤 곧바로 “몸무게를 15~20㎏은 빼라”고 엄명을 내렸다.
농구판에 다시 돌아온 ‘탕아’ 정상헌의 각오도 남 다를 수밖에 없다. 농구팬은 독기를 품은 정상헌의 재기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강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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